타작물 변경에 직불금 유인책 불구
임차농 등 현실 무지 탁상행정 비판
불신 탓 ‘양곡관리법 개정’ 의문도
정부 “유동적으로 면적 계속 감축”

21일 오전 여주시의 한 모내기 현장. 구름 몇 점 사이 초여름 햇살이 쏟아져 벼 심기 좋은 날임에도 농민 전모(55)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지난해 ‘쌀값 폭락’의 기억이 가시지 않았는데 올해도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될까 걱정을 지우지 못해서다.
전씨가 이런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정부가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과 쌀 가격 안정화를 위해 올해부터 추진 중인 ‘벼 재배면적 조정제’가 농가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는커녕 반발을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쌀 생산량을 기준으로 시군마다 목표 감축면적을 배분하고 벼를 타 작물 재배로 바꾸는 농가에게 직불금을 높여 지급하는 유인책을 제시했다.
전씨는 “이미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벼농사를 해오던 사람들이 다른 작물로 이동한다는 일이 말처럼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다양한 요인으로 움직이는 쌀값이 이런 단순한 정책으로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농지가격이 비교적 높은 경기도 농가의 경우 임차농의 비중이 높아 작물 변경 과정에서 임차농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문제도 있는데, 어떤 농민이 이런 사업을 반기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쌀 시장 안정화 등을 위한 정부·지자체의 정책이 실제 농업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농가 현실을 깊이 고민하지 않은 탁상 정책이 반복되는 점과 일관성 없이 정부에 따라 바뀌는 정책방향에 대한 오랜 불신이 농민들에게 자리잡은 영향이 크다.
이런 이유로 일부 농민들은 이번 조기 대선의 유력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공약으로 내놓은 양곡관리법 개정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있다. 개정안은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남는 쌀을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며, 유사 내용을 담은 복수의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이천 백사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이모(58)씨는 “농가소득 안정을 적극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법에 의미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선자 신분이 되면 비용 문제로 실행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벼 재배 면적 감축 사업과 관련해 농림부는 농가 현장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으며, 쌀 수급 상황에 따라 정책방향을 조정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전략작물·친환경 작물로 전환할 경우 높은 직불금을 지급하며 정부 사업 외에 각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감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양곡법 국회 추진 여부와 별개로 면적감축 사업은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