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인천서 성장기… 제주와 교류 연결고리 역할”

제주 지역신문 4·3특별취재반에서 10년 이상 기획 보도로 진상 규명에 힘쓴 ‘제주4·3’ 전문가가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로 취재는 시작됐다.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인천부평서초-부평중-부평고를 졸업했다. 성장기를 인천에서 보낸 그는 역사의 현장을 접했고, 직접 겪었다. 현재까지 인천과의 끈을 이어온 제주4·3평화재단 김종민(64·사진) 이사장 이야기다.

1978년 2월 부평고 2학년 시절 성당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받은 사진은 평범했던 사춘기 소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똥물을 뒤집어 쓴 여공의 사진이었다. 인천 동구 동일방직에서 여성 노동조합원들이 사측으로부터 당한 이른바 ‘똥물투척사건’이다.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대학 수업을 듣던 그 시절 청년 김종민은 홀로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따라 귀농할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1986년 5월 인천 주안역 앞 거리에 나선 각계각층 시민과 그의 바람은 다르지 않았다. 광장으로 나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대학 졸업 후 제주로 귀농한 그는 우연한 기회로 1987년 제주신문사에 입사했다. 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해 전국에 퍼진 민주화 열기로 제주에선 4·3을 취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게 특별취재반 활동이 시작됐지만, 사주와의 갈등으로 기자들이 해직되며 4·3 취재는 중단됐다.

제주도민 지지를 받던 해직 기자들은 도민주를 모집해 제민일보를 설립했고, 4·3 취재도 재개됐다. 금기로 여겨졌던 4·3 취재는 ‘발품 팔기’의 연속이었다. 어렵게 얻은 희생자 유족의 증언을 토대로 사료와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였다. 그렇게 456차례 연재된 기획취재 ‘4·3은 말한다’는 지난 4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김종민 이사장은 제주와 인천을 잇는 연결고리다. 지난해부터 제주4·3평화재단과 인천시교육청은 ‘제주4·3-인천5·3’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끈질긴 생명력과 회복력으로 살아남은 제주공동체의 에너지를 인천을 비롯한 전 국민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