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더미 위에서 희망의 불씨를: 츠바이크의 예레미야 아홉 장면 드라마┃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
윤식·김영호 옮김. 동연출판사 펴냄. 320쪽. 2만2천원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실 속 문명과 이성이 무너져가던 시기. 30대 중반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무력감과 절망을 안고 붓을 들었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 그는 고대 유대의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외치며 시대를 향한 강력한 경고의 북소리를 울렸다.
그 메시지가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잿더미 위에서 희망의 불씨를’이다.
이번 한국어판은 구약학 박사인 김영호, 김윤식 교수의 공동 번역으로 깊이 있는 신학적 이해와 문학적 섬세함을 모두 담아냈다.
김영호 박사는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신학과 석좌교수로 구약성서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구약성서 두루마리를 쓴 사람들’ 등이 있으며 현재 경인일보 오피니언 필진으로도 활동 중이다.
김윤식 박사 역시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 교수로 구약성서를 연구하고 있으며 수원 한민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이 책은 평전 문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츠바이크가 아홉 장면을 통해 예레미야의 삶과 예언을 그려낸 희곡 형식의 문학작품이다. 그는 예언자의 내면적 갈등과 역사적 고난을 생생하게 복원하면서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고개를 들던 시대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동시에 절망 속에서도 인간과 역사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던 츠바이크는 고난 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언어를 건넨다.
특히 ‘평화에 이르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란 메시지를 통해 존재론적 성찰로 독자를 이끈다. 종교적 신념과 권력의 오용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생명의 존엄을 놓지 않는 그 필치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출간된 지 100년이 넘은 이 작품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흥미 때문만은 아니다. 불안정한 국제 질서와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이 시대에 츠바이크의 예언적 문학은 여전히 살아 있는 거울이자 정신적·영적 감각을 일깨우는 강력한 울림이 된다.
청파교회 김기석 원로목사는 “이 책은 무뎌진 우리의 감성을 깨우는 북소리”라 평했고, 소설가 유광수 교수는 “예레미야의 번민과 눈물을 통해 아랫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 진정한 선지자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잿더미 위에서 희망의 불씨를’은 절망의 시대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평화의 가치를 놓지 않으려 했던 한 작가의 절규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격려다.
/양형종기자 yang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