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방사 사칭, 납품 의뢰로 신뢰

별도 물품값 제3계좌 입금 유도

공식 연락처에 교차 확인 필수

용의자가 피해자에게 전달한 ‘수도방위사령부 군수지원대대’ 명의의 물품 공급 결제 확인서. 군 로고·직인·계좌번호 등이 실제처럼 구성돼 있으나 모두 가짜다. /이모씨 제공
용의자가 피해자에게 전달한 ‘수도방위사령부 군수지원대대’ 명의의 물품 공급 결제 확인서. 군 로고·직인·계좌번호 등이 실제처럼 구성돼 있으나 모두 가짜다. /이모씨 제공

납품 거래가 성사될 것처럼 접근해 제품 제작을 유도한 뒤 금전까지 송금받고 연락을 끊는 ‘노쇼’와 선입금 피해가 동시에 나타난 신종 복합형 사기 사건이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22일 피해자의 손자인 이모(20대)씨는 “할아버지는 관공서 납품 경험이 많아 의심하지 않으셨고, 상대가 나중에는 전투식량 선납까지 부탁해 총 960만원을 보냈다”며 “제품도 만들고 돈도 보냈는데 연락이 끊기고 나서야 사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는 광명에서 50년 가까이 유리 가공업을 운영해온 고령의 소상공인이다. 용의자는 지난 19일 처음 연락해 ‘수도방위사령부 군수지원대대 중사 최수권’이라며 군부대 책상용 유리 납품을 제안했고, 군 직인이 찍힌 공문과 명함 사진을 전달하며 정식 계약처럼 접근했다. 피해자는 이를 믿고 실제 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용의자가 ‘전화하지 않으면 출발할 수 없다’며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을 요구한 문자 메시지. 급박한 상황을 연출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수법이다. /이모씨 제공
용의자가 ‘전화하지 않으면 출발할 수 없다’며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을 요구한 문자 메시지. 급박한 상황을 연출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수법이다. /이모씨 제공

용의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은 뒤, 이후 별도의 물품과 관련해 선입금을 대신해줄 수 있는지 요청하며 제3자 명의 계좌로 금전 이체를 유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는 이미 납품 계약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추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용의자는 “군 장병들이 식사를 못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을 덧붙이며, 금전 이체를 정당화하려는 정서적 설득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측은 군 장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맡아도 된다는 생각에 요청을 수용했다.

며느리 김모(50대)씨는 “군에 간 청년들이 굶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니 아버님이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체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며, 제품 비용까지 합하면 피해액은 1천만원가량으로 추산된다. 피해자는 현재까지 송금액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용의자가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 ‘전투식량 80박스를 오늘까지 준비해달라’며 급박한 상황을 강조하고, 실제처럼 구성된 국방부 명의 공문까지 함께 전송했다. /이모씨 제공
용의자가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 ‘전투식량 80박스를 오늘까지 준비해달라’며 급박한 상황을 강조하고, 실제처럼 구성된 국방부 명의 공문까지 함께 전송했다. /이모씨 제공

이날 공문에 기재된 ‘중사 최수권’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본 결과, “보이스피싱 의심 번호로 곧 통화가 종료된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공신력을 악용한 사기 수법은 최근 선거철을 맞아 군, 대선 캠프, 공공기관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추세다. 사칭형 사기 피해를 예방하려면 기관 명의로 온 요청은 반드시 공식 연락처를 통해 교차 확인해야 한다.

한편, 광명경찰서는 이날 오전 피해자로부터 사건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