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고백에 거부 의사를 밝힌 여성을 스토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50대가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대폭 감형됐다. 피해 여성이 상대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차단한 상태여서 범죄 성립 요건인 ‘도달’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항소6-1부(곽형섭 부장판사)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원심은 A씨에게 징역 8년에 집행유예를 내렸다. 또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 2023년 5월 20일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30대 여성 B씨에게 ‘당신을 좋아합니다. 오래된 감정입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고, 계정을 차단당하면서 B씨가 연락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같은 달 26일부터 7월 30일까지 본인의 페이스북에 “글 못쓰게 하고...그래놓고는 또 거절은 안 해요. 그 때 그 시절과 똑같애. sns 폐인들의 놀이” 등의 글을 게시하고 피해 여성이 재학중인 학교에 방문하는 등의 방식으로 총 78회에 걸쳐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를 받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스토킹을 해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켰다”면서 “피고인은 일부 범죄행위를 부인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B씨가 A씨의 계정을 차단한 상태였기 때문에 게시글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극행위가 필요했으므로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정보통신망을 사용한 스토킹 행위는 글 등이 상대방에게 ‘도달’해 불안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전체 공개 설정이었지만, 피고인의 행위는 글을 작성한 것에서 종료된다”면서 “피고인의 행위만으로 위 글이 피해자 계정 등에 표시로 나타나지 않아 직접적으로 전달된 건 아니다”라고 봤다. 이어 “나아가 피해자는 피고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차단한 상태였고, 피해자는 자신의 부모님 계정으로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여 피고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확인했다. 이를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피해자의 학교 등에 찾아간 행위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다니는 학교를 1회 방문하는 등 지속성이 없었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위해 찾아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스토킹 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다만 A씨가 2023년 7월 B씨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다는 방법으로 스토킹한 일부 혐의는 그대로 유죄로 판단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