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현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궁금해한다. 유한한 삶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 때때로 두렵기까지 하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다면 ‘타나토포비아(Thanatophobia)’로 진단된다. 노년기뿐 아니라 사춘기 청소년들의 발생률도 높다. 죽음의 가능성 자체에 극도로 예민해지고 우울장애와 거식증, 불면증을 동반한다.
죽음의 두려움은 불로불사를 꿈꾸게 한다. 숱한 암살 시도를 받았던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수은이 든 탕약으로 스스로 수명을 단축했다. 의학기술의 발전은 인체 냉동보존을 상상케 했다. 세계 최초의 냉동인간은 미국 심리학 교수 제임스 베드포드다. 그는 1967년 영하 196도 냉동캡슐을 선택했다. 사망선고 직후 체내 혈액을 제거하고 동결 방지제를 주입해 액체 질소탱크에 보관됐다. 신의 영역인 부활은 인류의 숙제로 남아있다.
“꽃은 필요 없습니다.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마지막으로 들었던 나의 목소리를, 내가 좋아했던 대사를,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배우 박정자(83)의 셀프 부고장(訃告狀)이다. 지난 25일 강릉 순포해변에서 ‘생전 장례식’이 열렸다.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감독 유준상)’의 마지막 장면 촬영 현장은 현실 세계와 오버랩됐다. 박정자는 고운 연둣빛 꽃무늬 드레스에 빨간 구두를 신었다. 자신의 상여행렬을 이끌며 춤을 췄다. 문상객들은 출연작 이름을 쓴 150개의 만장을 들고 뒤를 따랐다. 연극판의 추억을 나누고, 축하공연도 즐겼다. 1박2일 ‘죽음 없는 장례식’은 흡사 축제의 모습이다. 유튜버 박막례(78) 할머니의 ‘신랑 없는 결혼화보’에 이은 유쾌한 반전이다.
“나는 죽음이 코앞에 닥치기 훨씬 이전에,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엘리자베스 쿼블러 로스는 ‘죽음과 죽어감’에서 죽음의 5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를 말했다. 웰다잉(Well-Dying)은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이다. ‘생전 장례식’은 맞이하는 죽음보다 더 능동적이다. 시인 박용재는 박정자의 묘비명을 ‘너 언제 연극 보러 올래?’라고 했다.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이 끝나지 않은 이유다. 박정자의 부고장은 웰에이징(Well-Aging) 초대장이기도 하다.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이 웰다잉의 시작이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