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모씨네 ‘1945 전후 제국의 교체’ 학술대회서 연구 내용 발표
인천조병창 운영·조직 변화, 해방 직후 연합군의 조병창 점령·조사, 애스컴시티 변화 등
연구팀, 미국 등 발굴·수집 자료 토대로 새로운 사실 밝혀내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일본과 미국 등의 군사기지로 쓰이다 인천시에 반환된 부평 캠프마켓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은 지난 28일 오후 인하대 정석학술정보관 대회의실에서 학술대회 ‘1945년 전후 제국의 교체 - 군사기자와 부평 도시공간 변화’를 개최했다.
신주백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아카이브연구소장이 1941년 신설된 일본육군조병창의 운영·조직과 그 변화 과정을 연구한 ‘일본군의 전쟁전략과 조병창의 변화’를 주제로 첫 번째 발표에 나섰다.
신 소장의 발표에 따르면, 애초 일본육군 인천조병창은 앞서 1917년 평양에 조성된 평양병기제조소와 함께 일본이 새로 설치할 ‘조선공창’에 속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1941년 12월2일 문을 열면서 조선공창이 아닌 ‘인천육군조병창’으로 승격돼 신설됐다.
신 소장은 “공창은 무기만 제조한다는 의미이고, 조병창은 무기를 제조하면서 주변의 민간 군수공장에 대한 계약과 관리·감독까지 책임지는 역할”이라며 “인천육군조병창은 부평의 공장만이 아닌 평양제조소와 경성, 부산, 성진 등 병기 제조 감독관 3곳 등 식민지 조선의 군수공장을 다 합친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초창기 인천 조병창은 총기류 중심으로 생산 라인을 가동했다. 인천 조병창은 1944년부터 소총뿐 아니라 총검, 차량, 무전기 등으로 생산 품목의 변화를 준다. 신 소장은 “1944년을 기점으로 일본군의 전쟁 전략이 바뀌는데, 일본군은 1943년 9월 이후 수세적 상황을 인정하고 버티는 힘을 중시하게 된다”며 “1944년 군수회사법이 적용되면서 인천육군조병창이 민간 군수회사들을 관리공장, 감독공장, 지정공장으로 분류해 관리·감독했다”고 했다.

이어 전갑생 모씨네 아카이브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해방 직후 미국·영국 연합군이 인천 조병창 시설을 점령·조사하고 한국군에 반환하는 과정을 새롭게 밝힌 ‘미·영군의 적국(敵國) 군사시설 조사와 관리’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홍렬 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945~1949년 시기를 중심으로 ‘애스컴시티(ASCOM City) 안팎의 공간 변화 연구’를 발표했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등에서 수집한 인천육군조병창 배치도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수집 자료를 토대로 도면중첩법을 통해 조병창에서 애스컴시티로 공간이 변화하는 과정과 각 공간·시설의 특징을 살폈다.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 연구팀은 2022년부터 인천시의 캠프마켓 관련 기록물 수집과 구술채록 사업을 단계별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연구 내용은 연구팀이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에서 발굴·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발표자 외에도 손민환 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팀장, 서준석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원, 엄운진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종합토론 좌장은 정종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장이 맡았다.
신주백 소장은 “연구팀은 100년이 넘는 공간의 역사에 관한 문헌, 사진, 영상, 지도, 도면 등을 일본, 미국, 영국, 국내에서 수집하고 증언을 채록했다”며 “이러한 작업은 춘천의 레고랜드와 부산시민공원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용산국가공원을 추진하는 국토교통부도 하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