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개입 가능한 법률혼과 달리 입증 우선
결혼식·집안행사 참여·동일주소 등 1개 이상
‘사적 공간 이성문제’ 취급해 소극적 개입
“경찰 초동대응 중요… 판단책 매뉴얼화”

매년 보복살인이 반복되는 사실혼 관계(5월 30일자 5면보도)가 가정폭력처벌법의 사각지대로 떠올라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 조치 적용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경제적 이유 등으로 동거커플이 늘고 교제 관계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가정폭력 관련 법 적용 대상을 법률적 혼인관계를 넘어선 관계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제도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을 보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자’, 즉 사실혼 관계를 가정구성원 중 배우자로 인정하고 있다.
다만 폭행 발생 시 혼인신고로 별다른 조사 없이 곧바로 개입 가능한 법률혼과 달리 사실혼은 피해자가 부부, 혼인에 준하는 관계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지난 2023년 7월 개선된 경찰의 ‘사실혼판단체크리스트’에 따라 결혼식·자녀·집안행사 참여·생활비 공동 여부와 주민등록상 동일주소, 주변 혼인 인식 등의 8개 항목 중 최소 1개 이상이 인정돼야 한다.
문제는 가정폭력 발생 상황에서 피해자는 현장을 방문해 초동조치에 나선 경찰에게 이같은 사실혼 입증과 관련된 진술을 적극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동거하는 가해자로부터의 보복범죄 우려 때문에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신고를 철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재 경찰은 초동조치 상태에서 동거 중인 경우 앞선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사실혼 여부를 먼저 묻기도 한다. 그러나 ‘사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성 간 문제’를 지나치게 개입한다며 가해자가 현장 경찰관을 고소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많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폭행이나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을 때, 초기 출동한 현장 경찰관이 잘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다만, 시급한 상황에서 현재 동거 상태인 피해자에게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재발의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좀 더 매뉴얼화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9일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지난해 기준 20대 남성(81.1%)과 여성(81.0%) 모두 80% 이상이 비혼 동거에 동의한다고 했다. 비혼 출산 동의율의 경우 20대 남성은 43.3%, 여성은 40.7%이며 2008년에 비해 각각 14.6%p, 16.8%p 상승했다. 이처럼 법률적 혼인관계가 아닌 비혼 동거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가정폭력 관련 법률에는 교제 관계인 사람들이 명확히 포함돼 있지 않아 법적 보호의 공백이 존재한다”며 법의 적용 대상을 동거와 장기간 연애 등의 ‘친밀한 파트너’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