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진보 논객 유시민이 ‘설난영 ’ 설화로 대선 막판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찐 노동자’ 출신인 설난영씨가 ‘대학생 출신’ 김문수와의 혼인으로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사모님을 거쳐 “인생에서는 갈 수 없는 자리”에 간 바람에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노조 폄훼 설화를 남긴 설 여사에 대한 평가였다. 계급주의에 입각한 여성과 노동 비하라는 비난 여론이 솟구쳤다.

유시민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이해해 보니 ‘설난영씨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진보 진영의 대북 이론이다. 그가 김정은을 ‘계몽군주’라 하고, 북한의 핵 개발은 체제 유지용이자 한반도 비핵화용이라 주장한 근거다. 그를 세상에 알린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의 ‘항소 이유서’부터 유시민은 내재적 접근법에 정통했다. 총학생회의 가짜 대학생 감금 폭행이 태어나선 안될 군사정권의 폭정 때문이라 했다. 학생운동권의 시각으로 시국을 평가해 불법을 무마한 것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내재적 접근법을 정치에 적용하면 우리 편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반대편에겐 더없이 가혹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의혹은 “헛소리”이고, 부인 정경심 교수의 컴퓨터 반출은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보전”이다. 20대 대선에서 보수 후보를 지지한 2030 남성은 ‘쓰레기’이고, 진보 후보를 지지한 여성은 ‘나라를 구할 주역’이다. 일관된 기준은 ‘진영은 무조건 옳다’이다. ‘시미니즘(Siminism)’으로 명명할 만하다.

상식적인 보수 논객들의 윤석열 단절 요구를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는 거부했다. 유시민의 설화에도 이재명 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이유다. 이 후보를 위한 민주당의 사법권 재설계가 현실이 될 수 있는데, ‘설난영 발언’에 이르러 진보 제일논객 유시민의 진영주의에 봉건적 내음이 물씬하다.

유시민은 항소 이유서 마지막에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썼다. 그의 슬픔과 노여움은 보수에 한결 같다. 조국을 위해 진보의 집권을 도모할 방편이라 이해할 수 있다. 집권 후에 조국을 위해 진보정권의 잘못에 슬픔과 노여움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아니라면 진보진영도 국민의힘처럼 봉건 정당으로 퇴화하고 유시민은 ‘친윤’과 동급이 된다. 늘 적중하는 슬픈 예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