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남아 저임금·기술력 추격 중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대전환 필요

미래의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위해

과학이 기술에 종속되는 시대 끝내고

독립적 투자·연구 인력 육성 나서야

이재우 인하대 교수·前 미래학회 회장
이재우 인하대 교수·前 미래학회 회장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새 정부는 공약 실현을 위해 새로운 부처를 신설하거나 기존 부처를 통폐합하려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며 산업과 기술 중심의 정책을 통해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해 왔다. 이제 우리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문턱에 서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매우 뛰어난 ‘추격자’였다. 선진국을 따라잡고, 동시에 우리를 추격하는 나라들을 따돌리며,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나아가 지식산업과 지능산업으로의 전환에 일정 부분 성공하였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화학 등 제조업에서 우위를 확보했고 닷컴버블 시기에 디지털 산업과 문화 산업에 과감히 투자하여 오늘날 ‘인터넷 강국’, ‘문화 강국’이라는 위상을 얻게 되었다. K-팝, K-푸드, K-웹툰, K-화장품 등 상품부터 문화까지 대한민국이 선도하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과학, 기술, 산업, 경제, 사회 정책 간의 조화로운 결합 덕분이었다. 필요한 분야에 선제적으로 재원을 투자해 추격자로서의 이점을 극대화한 것도 주효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저임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의 산업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는 내연기관에서 친환경 자동차로 빠르게 전환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인공지능 시대에 필수적인 반도체에 대한 대응이 늦었던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고,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하이닉스나 대만의 TSMC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삼성의 위기감은 곧 대한민국 전체의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외국 기업이 미국 내에 기업을 세울 때 인센티브를 지급하여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도약하기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첨단 과학, 첨단 공학, 첨단 산업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특히 미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첨단 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육성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과학과 기술을 하나로 묶어왔고 이로 인해 과학이 기술과 산업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의 명칭에서 보듯이 기술 중심의 정책 기조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과학은 그저 기술의 수식어에 불과했다. 필자의 대학원 은사였던 고(故) 조병하 교수님은 우리나라가 기술 발전을 빠르게 이루기 위해 과학에 기술을 붙인 ‘과학기술’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고 말씀하셨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최형섭 박사 역시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기술을 빠르게 모방하고 일부 수정하여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던 시기에는 기술 중심 정책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임금 수준은 이미 상당히 높아졌고 개발도상국들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빠르게 제조업 분야를 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농민공을 앞세워 제조업을 성장시켰고, 현재는 일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앞서기 시작했다.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을 능가하는 역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상황에 처해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과학이 기술에 종속되는 시대를 끝내야 할 때이다. 진정한 첨단 기술은 첨단 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연구자들의 끈질긴 연구를 통해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오는 6월3일 선거 이후 출범할 새 정부는 과학과 기술을 분리하여 과학에 대한 독립적인 투자와 연구 인력 육성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나라는 추격자를 넘어, 진정한 선도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재우 인하대 교수·前 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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