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병은 오랜 세월 현대전의 신(神)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양상이 달라졌다. 드론이 전신으로 등극했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부터 공격용 드론을 사용했다. 지난해 ‘마구라(Magura) V5’ 드론은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 초계정을 격침했다. 수면 가까이 저공비행하며 레이더망을 피했다. 이어 그해 12월에는 북한군 병사들이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러시아가 전선에 쏟아부은 포탄의 양은 우크라이나의 10배가 넘는다. 우크라이나 군은 화력의 열세를 드론으로 만회해왔다.
우크라이나가 기어코 드론으로 전쟁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러시아 본토 공군기지 5곳을 기습 공격한 ‘거미줄 작전’을 펼쳤다. 117개의 드론이 Tu-95, A-50 등 러시아 전략폭격기와 공중조기경보기 41대를 파괴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장거리 전략폭격기의 최소 34%가 무력화됐다고 주장했다. 피해 규모는 70억 달러(약 9조6천600억원)로 추정된다. 수백 달러(수십만원)짜리 소형 드론이 수십억 달러(수조원)의 전략폭격기를 파괴한 것이다. 벌이 매를 떨어뜨린 격이다.
이번 작전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지휘했다. 전세가 밀린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허를 찔렀다. 계획부터 수립까지 1년 6개월이 소요됐다고 한다. 최전선에서 4천300㎞ 이상 떨어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은 사거리상 타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드론은 못 갈 곳이 없었다. 드론을 실은 컨테이너 트럭이 러시아 본토의 공군기지로 접근했다. 트로이 목마 같은 목재상자에서 드론들이 쏟아져 나와 전략폭격기를 동시 타격했다. ‘거미줄 작전’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존심만 건드린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패자로 간주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마를 짚었을 테다.
올해 우리 국방예산은 61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32%에 달한다. 압도적인 군사력도 북핵에 대한 우려는 일소시키지 못한다. 설상가상 드론전쟁 시대다. 자랑했던 압도적인 재래식 전력이 드론 앞에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말 북한의 드론이 백주에 용산의 머리 위를 왔다 갔다 했다. 드론에 농락당한 러시아를 불구경만 할 일이 아니다. 남과 북은 종단 거리마저 짧다. 새로 탄생한 정부가 경각심을 새겨야 할 ‘거미줄 작전’이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