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논리에 종속된 삶, 사회 파괴
균형의 모델 대표적 국가 ‘스웨덴’
핵심은 공정 제도 등 기반한 ‘신뢰’
李 정부, 중요한건 속도 아닌 방향
‘사람이 우선인 사회’ 향해 노젓길

6월4일, 대한민국은 약 6개월간의 국정 혼란과 극심한 갈등을 마무리하고 새 출발선에 섰다. 그러나 신정부가 맞이한 한국 사회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노인 빈곤, 청년 실업, 양극화, 기후 위기, 지역소멸, 포퓰리즘과 진영 대립 등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일상 속 공동체의 온기는 점점 사라지고 대립과 자본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한때 가장 순수한 공간이었던 초등학교는 이제 학부모가 변호사를 대동해 교사를 압박하는 공간이 되었고, 학교는 학부모의 무단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를 앱 푸시로 공지한다. 하교 후 친구들과 밤늦도록 마음껏 뛰놀던 운동장은 출입 금지 구역으로 바뀌었고 아이들이 밤늦도록 학원에 머물러 놀이터는 늘 텅 비어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파트 수준을 비교하거나 ‘개근 거지’ 같은 표현으로 서로를 낙인찍는 일도 벌어진다. 과연 이런 사회가 바람직한가? 우리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이 개념은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가 저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처음 제시했다. 그는 인간의 삶과 같은 본질적 가치가 시장 논리에 종속될 때, 사회가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경고하며 ‘시장사회’가 아니라 ‘시장을 가진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는 사회적 관계와 규범 속에 내재되어야 하며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인간적 가치와 공동체 안정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한국 경제의 핵심 과제는 생산의 효율성과 분배의 공정성 간의 균형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효율성은 시장 경쟁을 통해 공정한 분배는 사회제도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경쟁과 연대, 민간과 공공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뜻한다.
이와같은 균형의 모델로 자주 언급되는 국가 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야콥 할그렌 전 주한 스웨덴 대사는 자국이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국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신뢰’를 꼽았다. 그는 이 신뢰가 공정하게 작동하는 제도, 부패의 부재, 보편적 복지, 그리고 국가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에서는 부모가 출산 후에도 경력 단절 없이 일할 수 있고 모든 아이가 양질의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 정치권 또한 이념을 초월해 주요 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중시한다.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된 이재명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매우 높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목표를 향해 천천히 가더라도, 올바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야 한다. 수많은 도전과 저항이 있겠지만 한국이 보다 더 혁신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혁신’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어야 한다. 동시에 스웨덴처럼 투명하고 공정하며 청렴한 국가는 국민의 신뢰를 얻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혁신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공공복지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며 완전 고용과 포용을 지향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한국 경제는 현재의 저성장 함정을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이라는 비상사태 속에서 ‘구제·회복·개혁’을 내걸고 뉴딜 정책을 통해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그는 국민에게 희망과 변화를 제시했고 국민은 그에게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라는 지지를 보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향한 대전환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수십년간 누적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함께 방향타를 꽉 쥐고 푯대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한다. 거대한 전환을 앞둔 이 5년간의 항해는 분명 험난할 것이다. 그러나 폴라니가 말했듯 본질적 가치를 위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간다면, 결국 한국은 보다 번영되고 행복하며 풍요롭고 안정된 사회로 도약할 것이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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