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 삼동 시앙차이나

 

일반짬뽕 없는 덕에 체면차릴 필요 없어

정상 누운 쭈꾸미 먼저 먹혀… 덧없는 삶

성인병 위험한 나, 여기선 곱빼기 안된다

칼칼함 뒤에 달달함은 신선한 채소 증명

부모님은 두 분 다 ‘짜장파’셨다. 어렸을 적부터 짬뽕은 라면이나 김치찌개처럼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빨간 국물 계열의 음식들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음식쯤으로 여겼다. 반면 짜장면은 짜파게티 정도론 충족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중국집에 가면 선택은 늘 짜장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숭아학당의 맹구처럼 용기 있게 ‘짬뽕’을 외쳤다. 30여 년 전 처음 짬뽕을 접했던 그 당시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짜장면처럼 한 입에 달콤한 맛이 확 들어오진 않아 면 자체는 뭔가 심심했는데, 깊고 진한 국물 한 입의 임팩트는 꽤 충격적이었다. 면과 건더기는 남겼지만 국물은 한 방울도 남김 없이 쪽쪽 빨아먹었던 기억. 유년시절 짬뽕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래서 짬뽕을 영접할 땐 항시 국물 한 입으로 시작한다. 주방장의 땀방울이 그득 배어 있는 국물 한 입을 머금은 그 찰나가 더없이 행복하다. 맛있으면 더 좋고. 아직도 짬뽕을 두고 볶음밥에 딸려 나오는 빨간 국물 정도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웃기는 짬뽕이오.”

의왕시 삼동에 위치한 시앙차이나. 발음을 천천히 해야 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의왕시 삼동에 위치한 시앙차이나. 발음을 천천히 해야 한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과거와 현재의 공존

의왕시 삼동에 위치한 ‘시앙차이나’는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매장에 들어서면 과거 동네에 하나쯤 있던 괜찮은 중국집에 찾아 온 느낌이 든다. 실제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한 건 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지만 내부 인테리어가 딱 그렇다. 이곳은 맛집으로 널리 유명세를 탄 곳은 아니다. 다만 현지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로컬 맛집이다. 특히 짜장면과 탕수육이 맛있기로 입소문이 났는데 짬뽕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짬뽕은 종류가 딱 두 가지다. 삼선짬뽕과 차돌박이짬뽕. 일반 짬뽕은 없다. 누군가 밥을 사는 자리라면 삼선짬뽕을 먹고 싶어도 그냥 짬뽕을 시킬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체면을 여기서는 차릴 필요가 없다. 두 짬뽕 모두 1만1천원으로 동일하다. 취향대로 소신껏 선택하면 된다.

해산물과 채소가 수북이 쌓여 있는 삼선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해산물과 채소가 수북이 쌓여 있는 삼선짬뽕.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세월을 거스르는 풍성한 한 그릇.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양이 적게 나오는 곳은 다시 가기 싫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세월을 거스르는 풍성한 한 그릇.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양이 적게 나오는 곳은 다시 가기 싫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해산물과 채소가 수북이 쌓여 있는 삼선짬뽕 최상단에 주꾸미 한 마리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해산물과 채소가 수북이 쌓여 있는 삼선짬뽕 최상단에 주꾸미 한 마리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삼선짬뽕은 과거요, 차돌짬뽕은 현재다. 삼선짬뽕은 어렴풋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과거 오래된 짬뽕의 그 느낌이다. 옛 맛이지만 깔끔하고 선명하다. 해산물과 채소가 수북이 쌓여 등장하기 때문에 비주얼부터 일단 합격, 카메라를 꺼내 들게 한다. 주꾸미와 낙지, 새우, 오징어 등의 해산물을 비롯해 버섯과 갖은 채소들이 짬뽕을 가득 메우고 있다. 짬뽕 최상단에는 주꾸미 한 마리가 떡 하니 올라가 있는데 이 녀석은 정상에 오른 기쁨도 잠시, 결국 가장 먼저 입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덧없는 인생이다.

짬뽕 속 숨어 있던 통통한 새우를 발견하자 미소가 절로 나온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뽕 속 숨어 있던 통통한 새우를 발견하자 미소가 절로 나온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차돌짬뽕은 딱 요즘 트렌드에 맞는 짬뽕이다. 차돌박이의 고소함과 숙주나물 특유의 향이 짬뽕 전체를 뒤덮은 가운데, 적당한 맵기에 과하지 않은 걸쭉함 속에서 고기짬뽕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다. 면도 좋지만 진한 국물을 맛보다 보면 밥 한 숟가락이 떠오른다. 차돌짬뽕의 경우 짬뽕밥으로 시키는 것도 하나의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짬뽕밥의 경우 흰 쌀밥이 아닌 잡곡밥이 나온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참 좋다.

차돌박이짬뽕에 차돌박이와 숙주나물이 가득 담겨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차돌박이짬뽕에 차돌박이와 숙주나물이 가득 담겨 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풍성한 양과 신선한 재료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곱빼기는 기본이었다. 하지만 각종 성인병 수치가 위험 단계에 다다른 요즘엔 되도록 곱빼기를 지양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곱빼기를 시켰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 양이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양이 적게 나오는 곳은 다시 가기 싫다. 가성비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양이 적으면 마치 주인장의 야박함이 전해지는 것만 같아 살짝 빈정이 상한다. 개인적으로는 맛뿐 아니라 아낌없이 내어주는 풍성한 음식의 양도 음식점을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인장의 인심이 그리워지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잘게 썰기 귀찮아서 이렇게 하진 않았을 테고 주인장 인심의 크기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듯 싶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잘게 썰기 귀찮아서 이렇게 하진 않았을 테고 주인장 인심의 크기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듯 싶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곳은 짬뽕 한 그릇에 주인장의 넉넉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듬성듬성 썰린 큼직한 채소 사이사이로 해산물들이 속속 숨어 있다. 살짝 과장해서 성인 주먹 만한 크기의 브로콜리도 찾아볼 수 있다. 잘게 썰기 귀찮아서 이렇게 하진 않았을 테고 주인장 인심의 크기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 듯 싶다. 다이어트나 건강 등의 이유로 공기밥도 반절만 먹는 현대인들이 태반인데, 이곳의 음식 양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그렇지만 반갑다.

짬뽕 국물의 칼칼함 뒷맛에 달달함이 살짝 느껴진다. 채소의 양만 많다고 해서 단맛이 나진 않는다. 그만큼 재료가 신선하다는 것. 간혹 짬뽕 속 해산물이 질기거나 뻑뻑한 경우가 있는데 이곳 짬뽕 속 해산물은 하나같이 부드럽다. 식감에서 드러난다. 싱싱한 재료가 깔끔한 국물로 귀결되며 짬뽕의 완성도를 높인다.

짬뽕밥을 시키면 잡곡밥을 내어주는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짜사이가 맛있는 중국집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짬뽕밥을 시키면 잡곡밥을 내어주는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짜사이가 맛있는 중국집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흔히 김치가 맛있으면 그곳 음식이 다 맛있다고 한다. 같은 논리로 짜사이가 맛있는 중국집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여기 짜사이, 맛있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