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과 자본은 상호 지위를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강하게 유착한다. 15세기 메디치 가문은 막대한 부로 교황을 배출하고, 교황의 권력으로 부를 확장하는 권력과 돈의 선순환(?) 구조로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를 지배했다.
하지만 권력과 자본이 적대하면 자본이 필패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 1위 재벌 정주영은 대선에 출마했다가 기업을 망칠 뻔하자 김영삼 문민정부에 무릎 꿇고 싹싹 빌었다. 푸틴의 요리사 프리고진은 푸틴의 용병 기업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모스크바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공중에서 삭제됐다.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은 푸틴의 애완견일 뿐이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 정부의 금융시스템에 반기를 들었다가 재계에서 추방됐다.
트럼프 취임 직후 일론 머스크의 안하무인 행보가 전 세계의 관심사였다. 대통령 트럼프를 아랑곳 않는 그의 권력 행사에 ‘머스크가 사실상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부효율부(DOGE)의 비공식 수장으로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지휘하면서 트럼프의 통제를 벗어났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를 앉혀 두고 기자회견을 할 때는 다섯 살 아들을 목말 태운 채 입장했다. 양립할 수 없는 권력과 자본의 관계를 이탈한 장면은 역사적 상식에 어긋났다.
대선 1등 공신을 인내하던 트럼프가 폭발했다. 머스크가 트럼프가 공들인 감세법안을 정면 비판하면서 선을 넘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대한 존중 결여’를 지적하며 머스크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머스크는 트럼프를 성범죄자 앱스타인의 파일에 연루시키며 반격에 나섰고, 트럼프는 스페이스X 등 머스크의 기업에 대한 연방지원 단절로 반격했다. 테슬라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머스크가 고개 숙일 기미를 보였지만 트럼프의 분노는 멈추지 않는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브로맨스는 허세 가득한 권력과 과대망상적인 자본의 유착이 빚어낸 유례없는 촌극으로 끝날 테지만, 결말은 자본을 압도하는 권력의 본질을 재확인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을 듯싶다. 한국에선 제도적으로 정서적으로 불가능한 촌극이다. 다만 심각한 경제 위기 국면에서 권력과 자본의 관계를 사유해 볼만한 에피소드다. 권력과 자본이 유착하면 그 결과가 피지배계층에 치명적이지만, 불화해도 경제에 피멍이 든다. 이재명 정권과 기업 자본의 현명하고 효율적인 동행이 절실한 때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