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대 말 출간된 '아메리칸 싸이코'는 80년대 미국 소설중 가장 선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피 사이코 연쇄살인범 패트릭 베이트만은 일종의 마술같은 은밀한 마력으로 미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으며 한때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가 되기도 했다.
'아메리칸 사이코'(11월 4일 개봉)는 이런 소설을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로 알려진 여성 감독 매리 해런이 영화화한 작품.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은 그냥 '사이코'라 부르기에는 그 정도가 지나친 인물이다. 베이트만의 직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고 부러워하는 월가의 브로커. 하버드 MBA출신으로 금융합병사 최고 경영자인 그는 베르사체등 유명 디자이너의 옷만 입으며 1주일에 한번 최고급 스킨 케어를 받는다. 식사때는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들에게 둘러싸일 정도로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외형에서 한발짝만 물러나면 베이트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기' 그 자체다. 그는 거리의 부랑자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매춘부와 여자들을 난자한뒤 시체를 냉장고에 매달아 놓는다. 또 자신보다 더 좋은 명함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동료들을 도끼로 난도질한다. 살인동기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추측한다면 허영과 강박관념 정도.
이런 연쇄살인범이 어떤 이유로 미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을까! 1980년대는 '레이거노믹스'와 물질만능주의가 한창이던 시절. 우선 소설이나 영화나 베이트만을 통해 여피족들의 물질만능주의와 정신적 황폐함을 뒤틀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트만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따로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영화는 공포영화장면을 모방하는 여피 연쇄살인범 베이트만의 뻔뻔스러움과 잔인함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면서 맘껏 조롱한다. 베이트만의 존재는 또한 물질및 금지된 것에 대한 은밀한 유혹 그 자체이기도 하다.
금지된 것에 대한 매혹은 어느 시대,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것. 하지만 두시간 내내 이유없이 칼과 도끼를 휘둘러대는 베이트만의 살인행각은 아무리 '사이코니까'라고 자위해도 납득하기 힘들고 오히려 헷갈릴뿐이다. 베이트만의 살인행각이 '실제'일수도 있고, '상상'일수도 있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영화의 결말은 바로 이런 부담감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베이트만은 미국사회에서나 가능해 보이는 인물이다. 그래서 제목이 '미국의 사이코'인가!
베이트만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87년작)에서 열세살 소년이었던 배우. 그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제치고 주연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金淳基기자·islandkim@kyeongin.com
아메리칸 싸이코
입력 2000-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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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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