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 고교생이 학교에서 잘렸다. 좋은 말 놔두고 굳이 이렇게 표현하는 까닭은 그가 원치않는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다. 미션 스쿨의 학생회장이던 그는 학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교내방송을 통해 학생회장 퇴임의 변을 남겼다. '예배를 강요하지 말라'는 게 그 요지였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생님들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가 1인시위를 벌였다. 학교측은 전학으로 수습하려고 했으나, 그는 고민끝에 이를 거부했다. 학교측은 결국 학칙에 따라 그를 제적키로 결정했다.
저간의 사정은 매스컴을 통해 대략적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서 '강의석'이라고 치면 그가 기록한 자세한 일지와 숱한 네티즌들의 의견까지 덤으로 읽을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떠나야 하는 판에 고교생 하나 잘린 사건을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에는 고교생이 '감히' 1인시위에 나섰다는 흥밋거리를 넘어서,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 종교, 청소년인권, 표현의 자유 등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표면적인 얘기부터 해 보자. 그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열에 아홉은 학교측을 비난하는 글이며, 그 중에 대여섯은 밑도 끝도 없는 욕이다. '종교의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미친학교' 쯤은 약과고, 학교폭파론에서 기독교박멸론까지 논리도 설득력도 없는 언어폭력이 난무한다. 이런 단세포적인 공격으로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이 바로잡힐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인터넷 쓰레기들은 점차 걸러질까, 아니면 오히려 더 극성스러워질까.
물론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학교측의 처사가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학교측은 강군 제적이 종교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교칙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예배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생기지도 않았을 문제이고, 학교측이 예배에 반기를 든 그를 어떻게든 '추방'하려고 한 흔적도 역력하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나라에서 특정종교행사 참여를 강제하는 교칙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것은 '뺑뺑이배정'이 아니라 지원입학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강군을 퇴학시킨 이 시점에서 모른 체 눈감고 지나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문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우리나라 학교들의 교칙은 과연 교육적인가. 혹시 교육적 목적이라는 미명 아래 교육자의 편의만을 위해 금지와 억압 위주로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극단적인 예로, 몇달째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인천외고의 경우 복도에서 음식물을 먹다가 10번 걸리면 퇴학이라는 규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학교가 불합리한 교칙에 대해 학생들이 이견을 제시하고 개정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길도 열어두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지, 규칙에 의문을 품어서는 안된다는 권위주의의 시대는 벌써 지나갔는데도 말이다.
강군이 '발칙하게' 시위에 나선 것을 나무라는 어른들도 많다. '수상쩍은' 단체가 그를 부추긴 탓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철없는 영웅심리의 발로라고 보기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기가 어디에 있건 먼저 따져봐야 하는 건 그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이고, 왜 자신의 의견을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는가여야 한다.
강군의 행동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낡은 권위에 불복종한 대가(代價)로 잘렸다. 그래도 그는 오히려 의연하게 학교의 명예와 선생님들을 걱정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청년도 아니고 소년도 아닌, '청소년'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을 붙여주고, 잠자코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나 가기를 바라온 그들이 당당한 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고 있다. 미숙한 철부지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싸안지 못하는 우리 사회 아닐까. /양훈도(논설위원)
'예배를 강요하지 말라'
입력 200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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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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