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바, 구아바, 망고를 유혹하네~~.” 가수 김C의 표정이 일품이다. 전편 이효리의 망가진 망고송보다 더 코믹한 김C의 CF를 아무 생각없이 들여다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구아바가 뭐지? 찾아보니 잉카 지역 식물이란다. 망고는 열대 과일이다. 남미와 열대과일이 배타고 태평양 건너와 만들어진 캔 음료가 국내에서도 히트를 쳤다. 농산물 개방시대가 실감난다. 하긴, 그런 게 구아바 망고 뿐이랴.
그런데, 도대체 배삯이 얼만데, 저 이국과일들을 실어와 그렇게 값싼 음료를 만들어 팔 수 있을까. 아마존 열대우림을 밀어낸 자리에 거대한 콩 농장을 만들고, 그 콩을 미국이나 호주에 싣고 가 소를 먹이고, 그 소고기를 다시 우리나라에 실어 와 파는 데도 국내산 소고기보다 훨씬 싸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하고, 농업 목축업이 효율화 되었다고 해도 참으로 헤아리기 힘든 요술같은 셈법이다. 이걸 신자유주의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지구차원의 낭비요 착취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우리나라 과실류의 자급률은 높은 편이다. 2002년 현재 88.9%나 된다. 물론 100%를 넘던 10여년전에 비하면 낮아진 것이고,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아 칠레 등지에서 재배된 과일들을 비행기로 배로 실어와도 우리 과일보다 싸므로, 앞으로 더 하락할 게 분명하지만, 곡물자급률보다는 월등히 높다.
곡물자급률은 2002년 30.4%, 2003년엔 더 낮아져 26.9%에 불과하다. 사료로 쓰이는 곡물류를 제외할 경우에도 58.3%밖에 안된다. 한국사람이 먹는 곡물을 기준으로 보면 하루 세끼 가운데 한끼도 자기 땅에서 지은 작물로 짓지 못한다는 얘기다. 단지 쌀만은 자급률 107%다. 그저 밥만 우리 쌀로 차려먹는 셈이다. 국수나 빵은 거의 전부 남의 것이다. 밀의 자급률은 고작 0.7%고, 콩은 7.3%니까. 지난 70년만 해도 밀은 15.4%, 콩은 무려 86.1%였다.
자급률을 칼로리로 따져봐도 47%다. 한국인의 활동에너지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바다 건너 먹거리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일본의 열량자급률이 40%이므로, 일본보다야 아직은 나은 편이지만, 문제는 우리의 하락속도가 훨씬 빨라 일본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전망된다. 더욱이 도하개발아젠다(DDA)니, 쌀개방협상이니 해서 외국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면 우리 자급률은 제로를 향해 곤두박질 칠지도 모른다.
이런 형편인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식량자급률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농업을 살리고, 우리 농촌을 지키겠다고 되풀이해서 다짐하고 강조해왔으면서도 말이다. 도대체 목표도 없이 뭘 어디까지 살리고 지키겠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자급목표가 있어야 나라전체의 농사지을 계획을 세우고, 농정자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확보·배분하며, 개방압력에 어떻게 대처한다는 전략이 나올 것 아닌가.
김영삼 정부가 우루과이 라운드(UR)로 성난 농심을 달래기 위해 60조나 퍼붓는 종합대책을 폈지만 결국 실패한 근본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와 같이 UR에 정신이 버쩍 든 이웃 섬나라는 지난 2000년 식량자급목표를 정했다. 2010년까지 칼로리 자급률은 45%, 주식용 곡물자급률은 62%로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한 것이다.
늦었지만 우리도 식량자급목표를 설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의 '농업·농촌기본법'에도 적정한 식량자급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유지하도록 명시돼 있다. 더이상 변덕스러운 국제농산물시장에 우리의 식량주권과 농업을 무방비로 내줄 수는 없다. 식량자급목표를 정하는 과정은 벼랑 위에 선 농민들을 안심시키고, 극에 달한 농정불신을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농산물수출국의 견제가 심하겠지만 거기 굴복해서는 안된다. 신토불이가 유통기한 지난 구호가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식량자급목표를 정하자
입력 200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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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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