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아니더라도 통일은 돼야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언제쯤 올 것이며, 오기는 오되 '어떤 통일'로 올 것이며, 왔을 때 과연 괜찮고 온전할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시계(視界) 제로의 암담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점에 있어 통일 독일은 “당신들 좀 잘 봐 두라”는 듯 우리에게 다정한 선배요 엄격한 사범이며 지독한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1989년 11월9일(현지시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포함한 국경을 전면 개방, 분단 독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이 활짝 열린 그 날 전 독일인은 길길이 날뛰듯 열광했고 전 유럽인이 들떴고 온 지구촌 인류가 가슴이 터질 듯 갈채를 보냈다. 유럽의 심장인 베를린이 두동강으로 잘린 채 막혔던 혈류가 터졌으니 왜 아니 그랬으랴. 1949년 동·서독 정부가 각각 수립된 이래 40년간 동·서독 간첩 교환 장소였던 글리니케르 다리, 그 통한의 다리를 넘어 서독 땅을 밟은 동독인들은 다시 한 번 흔희작약(欣喜雀躍)했고 발터 몸퍼 서베를린 시장과 크라크 동베를린 시장을 비롯한 베를리너들은 해머로, 곡괭이로 깨부순 장벽의 벽돌장에 수도 없이 키스를 해댔다.
 
그 부서져 내리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전세계 외신들은 '창조적 파괴'라고 타전했고 벽돌 한 장 한 장은 동·서독인 7천800만의 가보(家寶)로 모셔졌다. 배리 스터플러라는 미국의 부자는 5천만달러에 베를린 장벽 벽돌을 몽땅 사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자가용 제트기로 현장에 날아간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그 '창조적 파괴' 음을 미친 듯 축가로 연주했다. '베를리너 환상곡'이었다. 한국인도 현장에 섰다. 그녀들은 통일 독일이 한없이 부럽다는 뜻으로 '한국은 하나(Korea ist Eins)'라는 피켓을 치켜들었다.
 
감격의 서장(序章)은 이내 독일인의 벅찬 기대로 이어졌다. 서독의 '라인강의 기적'이 이제 동독의 '엘베(Elbe)강의 기적'으로 이어지리라는 장밋빛 기대였고 희망이었다. 그 장밋빛 환상의 실현을 위해 다음 해인 90년 7월 동독 경제는 서독 마르크 경제로 흡수됐고 동·서독 국기와 국가(國歌)도 서독 것으로 통일됐다. 통일의 그 해 서독의 GNP는 1조1천억 달러로 미국(4조4천억 달러), 일본, 소련에 이어 세계 4위였고 수출만도 3천200억 달러였던 그들은 온통 자신감이 넘쳐났고 온 유럽인들에게 '독일공포증(Germano-phobia)'을 일으켰다.
 
그러나 통일비용이 상상을 초월했다. 91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간 동독에 쏟아부은 돈이 9천500억 유로, 우리 돈 1천400조원을 넘었다. 우리의 내년 예산액이 131조원이라니까 물경 11년 예산치를 몽땅 들이부은 셈이다. 그래도 밑 빠진 독이다. 서독 수준에 못 미친 동독인의 불만은 탱탱하고 서독인은 그들대로 과도한 통일분담금에 부채가 늘어가고 실업률도 무려 18%에 달했다. 이제는 서독인의 24%가 다시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고 브란덴부르크 문이 굳게 닫히기를 바란다는 게 '슈테른'지의 엊그제 여론조사 결과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이제 '베를리너 둔주곡(遁走曲)'을 연주할 차례다. 15년 만이다.
 
그런데 우리의 통일은 어찌될 것인가. 분단선이 없어진다면 그 환상곡 합창이야 독일 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는? 산업은행은 “2000년에 통일이 될 경우 10년간의 통일비용이 1천800조원은 들 것”이라고 94년 9월 분석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이다. 1인당 GNP가 우리의 3배인 서독이 저토록 '아 옛날이여'의 파탄지경에 이르렀거늘 우리는 과연 심각한 통일후유증 없이 15년까지 지탱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간의 대한민국 위상과 정체는 과연 온전할 것이며? 이 어두운 땅에 누가 있어 그의 자신 있는 답을 구할 수 있으랴.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