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맹세한다' '하늘이 내려다본다'고 말한다.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천벌(天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하늘에도 눈들이 있고 맹세도 받고 심판도 내릴 무서운 존재들이 있긴 있는 것인가. 하긴 유사 이래만해도 '하늘나라'에 전입신고를 한 수십 억, 수백 억 혼령과 귀신이 자옥하게 떠 있을 것이고 하늘대국(大國)에도 잘난 대통령과 못난 대통령, 똑똑하고 머저리 같은 총리를 비롯해 판·검사와 헌법재판관까지 고좌(高座)에 높직이 버티고 앉아 있을 게 아닌가. 그리고 누구보다도 하늘나라엔 하나님이 계시다. 기독교의 하나님(God)과 이슬람의 알라(Alla) 신을 비롯해 하늘 길을 신봉하는 천도교 등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신도 하늘에 본적과 현주소를 두고 있을 것이다. 신화를 봐도 우리의 환인(桓因)과 중국의 반고(盤古), 일본의 다카마가하라(高天原) 등 민족 신은 모두 하늘에 있다.
그렇다면 아주 '쬐끔'이라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줄 알고 하늘의 심판을 받고 천벌을 받을까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사람이고 정상이다. 그런데도 이 땅에선 저 신성하기 그지없는 하늘을 향해 1년 365일 애니 데이, 애니 웨어 주먹질, 주먹총질 하지 않는 날이 없고 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눈만 뜨면 하늘나라 판·검사와 헌법재판관 나리들을 향해, 하나님 쪽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하늘 보고 주먹질한다'는 말은 '당치도 않은 짓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는 과연 하늘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을지 겁부터 앞선다.
2004년 이 해도 딱 보름을 남겨둔 1년 내내 우리는 눈만 뜨면 하늘에 주먹질을 해댔다. 떼를 지어 떼만 쓰면 통한다는 떼법(法)의 '떼∼한민국' 온갖 시위대가 매일같이 도처에서 하늘을 향해 '떼 주먹질'을 해온 것이다. 양대 노총과 전교조, 전공노가 그랬고 '4대 개혁법'인지 '개악법'인지를 둘러싼 정당과 국가 원로, 각계 단체가 그랬고 전국 지자체 이해 상충 단체들이 그랬다. 솥단지를 내동댕이쳤고 한 달에 5천여 곳씩 급증한 노점상들이 싸웠고 성매매 여성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소음 시위에 항의하는 역시위까지 벌어졌는가 하면 경찰서 앞마당까지도 시위대가 접수해버렸다. '이 천사(2204)'의 해가 아니라 '이 악마의 해'가 돼버린 것이다.
머리에 붉은 띠는 왜들 또 두르는가. 일제 때는 소학교 대운동 때 청군 백군이 두르던 띠나 고뿔 환자가 질끈 동여맨 띠를 '하치마끼'라 불렀다. 한데 50년대 말∼60년대 초의 일본 극렬 시위대가 두르던 그 붉은 '하치마키'의 뜻은 고약하다. '하치'는 사발(鉢), 주발, 바리때, 밥통을, '마키'는 '감기(卷)' '두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갈통' '대갈 바가지'란 속어가 '하치'요 이마에 금이라도 갈까봐 동여맨 게 '마키'라는 것이다. 원래 일본 가마쿠라(鎌倉)∼무로마치(室町) 시대의 무사들이 투구를 쓰기 위해 이마에 친친 감던 천 조각이 하치마키였다. 그런 걸 우리 강성 노조와 시위대가 이마에 두르고 있는 것이다. 요즘엔 일본 시위대도 두르지 않는다. 다른 나라 시위대도 물론이다. 지난 11월 교육기본법 개악(改惡)에 반대한 5천여 도쿄 시위대도 두르지 않았고 수력발전소 건설 문제를 둘러싼 중국 쓰촨(四川)성 한위안(漢源)현 2만여 농민 시위대도 동여매지 않았다.
미국은 피켓 든 행진이 시위대의 정형(定型)이고 프랑스는 서로 손잡고 횡대로 도로를 메운 채 행진하는 게 제 모습이다. 하늘에 주먹질을 하거나 붉은 띠든 뭐든 머리띠 따위는 없다. '게발트(Gewalt)'라 불리는 독일의 격렬 시위대도 소리만 내지를 뿐이다. 주먹질하는 과녁이 하늘이 아닌 사람이라면 주먹질 팔뚝 각도를 160도에서 90도로 꺾어 내리는 게 어떨까. 붉은 머리띠는 아예 없애는 게 좋다. /吳東煥(논설위원)
붉은 머리띠와 하늘에 주먹질
입력 200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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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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