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사망했다. 남의 나라 정치지도자의 자연사를, 그것도 지금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던 한 노(老)정객의 죽음을 굳이 떠올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1989년 6월 중국정부는 톈안먼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수천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을 장갑차 등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자오쯔양은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로서 참극이 벌어진 직후 스스로 베이징대학을 찾아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하다”며 울먹였다가 실각한 인물이다. 최고 권력자로서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양심을 선택한 점이 그가 돋보이는 이유다.
필자는 거인의 죽음에 대한 중국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톈안먼사태의 주역인 베이징대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톈안먼사태 때 언론매체역할을 했던 베이징대 게시판이나 인터넷에서는 그를 애도하거나 혹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대자보는 물론 글귀하나 찾기 힘들었다. 중국정부의 통제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대학생들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10여년 전의 지도자가 죽었는데…흥분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천하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중국인들의 의식수준이 겨우 이 정도인가 하는 느낌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톈안먼사태나 자오쯔양은 이미 잊혀진 역사의 유물이었을 뿐이다.
우리네 사회는 어떠한가. 며칠 전에 정부는 한일협정 관련 문건 중 극히 일부를 공개했다. 진작에 공개되었어야 했다. 한일협정에 대한 진실규명작업은 우리 사회 바로세우기와 관련한 중대한 과제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첫째, 일제 침략의 직·간접 피해자에 대한 보상작업의 적절성은 물론 구겨진 한국민들의 자존심도 회복하는 것이다. 둘째,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헌정사상 가장 긴 기간동안 독재로 일관했던 박 정권의 치적에 대한 검증작업은 단 한차례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셋째, 한국과 미국, 일본간의 올바른 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참에 독도의 영유권문제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이번에 문건의 일부공개만으로도 그간 항간에 떠돌던 여러 가지 설들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어차피 뚜껑을 연 이상 나머지 문건들도 조만간 전부 공개될 수밖에 없다. 설혹 이것이 판도라의 상자일지라도 말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규명작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작금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어떠한가. 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대대적인 역사적 진실규명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일반 국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번 한일회담 문서공개만 해도 그렇다. 문서가 공개된 직후 사이버공간만 후끈 달았다가 지금은 이해당사자들과 극소수 시민단체 등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40년 전에 이미 종결된 사건을 이제 와서 들추어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들이 지배적인 것 같다. 더구나 “국내적으론 장기불황으로 당장 먹거리마저 걱정인 판인데”하며 과거사를 들추어내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를 배부른(?) 자들의 유희(遊戱)나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 쯤으로 폄훼하는 듯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다. 맞는 말이다. 특히 바람직하지 않은 기억들은 의도적으로라도 망각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역사 또한 잊혀져도 무방한가. 그렇지 않다. 과거의 끝이 현재이듯이 현재와 분리된 역사란 의미가 없다. 오죽했으면 E.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 규정했을까. 과거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지침서이자 현재진행형이다. 역사를 홀대한 탓에 혹독한 대가를 치른 사례는 국내외적으로 얼마든지 발견된다.
작금 우리 국민들도 “역사란 잊어도 무방한 것”으로 치부하는 듯한 중국인들을 닮아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한구(객원 논설위원·수원대 교수)
자오쯔양과 한일협정문서
입력 2005-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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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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