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신 태고내 2·3·4 초중말'. 중학교 때 역사시간에 외워야 했던 '암구호' 가운데 하나다. 내용인즉 이렇다. 고구려·백제·신라의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했던 왕은 각각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마립간)이며, 그 시기는 2세기 초, 3세기 중반, 4세기 후반이라는 의미다. 물론 삼국의 고대국가 확립은 이보다 훨씬 소급된다는 게 지금의 정설이지만, 당시엔 이게 '국정교과서 역사'였고,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사실(史實)이었으므로 달달 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역사선생님의 독창적 아이디어인지, 대대로 전수된 비방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태정태세문단세…', '태혜정광경성목…' 등등과 더불어 수많은 역사 암호를 암기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작은 머리로는 도통 그 의미를 알아낼 수 없었던 지긋지긋한 암호들은 당시 중학생들에게 던져진 통과의례의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그 선생님들도 그런 식으로밖에 역사를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지 않았을까.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70~80년대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가 된 이유 역시 그런 역사교육과 무관치 않을 터이다. 역사는 무미건조한 사실의 집적이 아니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가르침은, 당시 서양 역사학계의 수준으로 보자면 그닥 신선한 것도 심오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백신 2·3·4…' 세대에게는 마치 심봉사 눈뜨듯 역사를 보는 눈을 번쩍 열어주는 '묘약'처럼 받아들여졌다.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해방전후사와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도되기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의 핵심은 바로 이 '대화'와 관련이 있다. 역사와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대화로서의 역사'에 눈뜬 수많은 역사학자·역사교사·역사학도가 70~80대를 통과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졌고, 진지하게 해답을 찾아나섰다.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그런 노력이 맺은 중간 결실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창립한 '교과서포럼'의 뉴 라이트 계열 학자들과 보수진영에서는 금성 교과서가 '자학사관'에 입각해 있다고 맹비난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금성 교과서는 분명 대한민국이 다양한 문제점과 모순 구조를 안고 있다고 서술돼 있다. 그러나, 이 정도를 굳이 '자학사관'이라는 일본 우익의 용어까지 끌어다가 역사교육에 엄청난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역사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 세대가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현재의 도전에 슬기롭게 응전토록 하는 데 있다. '역사공부의 효용은 조간신문의 기사를 이해하도록 해 주는 것'이라는 미국 역사가 칼 베커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므로, 근·현대사 서술이 자학적이냐, 자부심이 넘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史實)을 왜곡하지만 않았다면, 오늘의 문제를 얼마나 더 정확하게 인식토록 해 주느냐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
 
'분단이 고착화되는 겨울공화국'을 살아내면서 '통일'과 '민주화'라는 완성되지 못한 현재의 과제를 끌어안고 과거와 대화를 시도했던 그룹과, 같은 시기를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벅찬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관점에서 과거와 대화했던 그룹은 역사를 보는 눈이 현격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카의 말처럼 역사는 계속 다시 쓰여야 한다. '교과서포럼'은 '자학사관' 비난에 몰두할 게 아니라 '자부사관'에 입각한 자신들의 교과서를 쓰는 일에 전념해주기 바란다. 어느 쪽이 더 다음 세대의 현실이해에 도움을 줄 것인지는 그 다음에 판가름날 문제다. 역사교육의 자유민주주의도 그 때 실현될 것이다. /양훈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