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풀리면 한번 내려오겠다곤 했지만/ 햇살 좋은 날 오후 느닷없이 나타나는 바람에/ 물묻은 손 바지춤에 문지르며/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하듯/ 나 화사하게 웃으며 나타난 살구꽃 앞에 섰네//…몇 달째 소식 없어 보고 싶던 제자들/ 한꺼번에 몰려와 재잘대는 날/ 내가 더 철없이 들떠서 떠들어쌓는 날/ 그날 그 들뜬 목소리들처럼/ 언덕 아래 개나리꽃 왁자하게 피었네//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못 했는데/ 어어 이 일을 어쩌나/ 이렇게 갑자기 몰려오면 어쩌나/ 개나리꽃 목련꽃 살구꽃/ 이렇게 몰려오면 어쩌나'. (도종환, 꽃소식)
지난 주말 광교산 '꽃밭가득'에 다녀왔다. 겨우내 흙에 묻혀 봄꽃을 가꾸어온 정성을 보고 싶었다. 올해는 1주일쯤 늦으리라는 꽃소식을 먼저 들어보려는 욕심도 없지 않았다. '꽃밭가득'은 경기수원자활후견기관이 운영하는 화초사업단이다.
세 동으로 지어진 온실 안에는 손바닥만한 모종이 빼곡했다. 라벤다 로즈마리 프리몰라 팬지 페튜니아 알리삼 데이지…. 눈물인 듯 웃음인 듯 알록달록 작은 꽃을 피워낸 화분들과 이제 막 여린 줄기와 잎을 틔워올린 땅꼬마 화분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온실밖 바람은 아직 차다.
'꽃밭가득'은 올해로 세 번 째 봄을 맞는다. 3년 전 대한성공회 교동교회 신도 한 분이 거저나 다름없는 임대료로 1천500평 땅을 내주었다. 흙을 짚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로 화초사업단이 꾸려졌다. 어떻게든 자활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흙을 만지는 일은 기피하는 세태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이라 해서 다를 바 없다. 수십명이 거쳐가고 15명이 남았다. 흙이 좋아 이 일에 매달린 이들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제 정말 꽃밭을 가득히 채워가는 중이다. 고작 한달에 75만원 자활급여를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한 보람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꽃밭가득'은 지난해 2천500만원의 수익을 거두었다. 그 어느 곳보다 정성껏 가꾼 꽃들인데다 가격경쟁력에서도 뒤지지 않아 학교와 시가지 화단 조성 일감이 늘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햇살이 퍼지는대로 꽃밭을 만들어달라는 학교가 벌써 여러 곳이다. 손수 기른 모종을 가져다가 심어주고 제대로 꾸며주는 실력도 부쩍 늘었다. 조경과 화훼에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젊은 기술인력이 자진해서 합류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엔 어린이들이 견학과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온실도 한 동 지었다. '꽃밭가득' 식구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넘어서야 할 난관은 아직도 만만찮다. 자활 일터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면 수원시내 관공서와 각급 학교들만이라도 이들에게 일거리를 몰아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이들을 따돌리기 일쑤고, 화훼업을 하는 지역 유력인사가 이들의 꽃공급을 훼방놓은 일도 있었다 한다.
현재 수원시내 기초생활 수급자는 1만3천명. 이 가운데 자활 가능 인력은 6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화초·간병·청소사업 등으로 삶의 희망을 되찾고 있는 사람은 3개 자활후견기관을 다 합쳐야 고작 240명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자활 일거리를 찾아주는 일이 절실하지만 우선은 '꽃밭가득'과 같은 자활사업단과 자활공동체를 내실있게 키워가야 한다. 그럴려면 적어도 공공부문에 있어서만이라도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사업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까다로운 국화 재배까지 순전히 우리 힘으로 성공시켰습니다. 올해는 일반 기업체에도 우리 꽃을 납품하는 길을 열 작정입니다.” '꽃밭가득'을 이끌고 있는 수원자활 이형운 팀장의 목소리엔 봄기운이 실려 있었다. 누구보다 간절히 봄을 기다리며 열심히 준비해온 이들을 위해서라도 봄꽃은 활짝 피어야 한다. /양훈도(논설위원)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입력 200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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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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