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 오후 2시35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30대로 보이는 거지 차림의 한 여인이 엉덩이를 벌겋게 드러낸 채 대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한길 쪽을 향해 소피(소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숱한 차량이 상상도 못할 그 진기한 모습을 목격했음은 물론이고 방금 지하도 층계를 올라온 한 부인은 에구머니나 비명을 지르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순간 퍼뜩 떠올라 거지 여인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었다. 신라 충신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文姬)가 아니라 그녀의 언니 보희(寶姬)가 서형산(西岳) 꼭대기에 앉아 소변을 보는 바로 그 장면이다. 보희가 어느 날 밤 서악 마루에 앉아 소변을 보는 꿈을 꿨는데 그 액체가 온통 홍수를 이뤄 나라 안에 가득 찼다지 않던가. 그 신기한 꿈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동생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언니의 꿈을 샀고 처남인 김유신과 함께 3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아내(文明王后)가 되는 야망을 성취한다.

 신라 처녀 보희가 산마루에 앉아 소변 홍수를 일으켰다는 건 어디까지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꿈속도 아니고 보는 눈이 빗발치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하고도 청와대가 코앞 1천m 거리도 안 되는 대로변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프레스센터를 등지고 앉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볼 일을 봐버린 그 여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슨 의도였던 것인가. 혹여 그녀도 신라 처녀 보희의 방뇨 사태처럼 소변으로 가득 찬 서울 땅을 상상했던 건 아닐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녀는 그런 전설조차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뇌세포의 불들이 모두 꺼져 머리 속이 칠흑 같은 정신장애 여인이 무얼 어떻게 더 상상할 수 있으랴.

 밤, 도토리 등의 한 부분이 썩어 퍼슬퍼슬하게 된 상태를 순수한 우리말로 ‘수리먹었다’ 하고 살아 있는 나무가 오래 돼 저절로 썩어 구멍이 훤하게 뚫린 상태를 ‘구새 먹었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보리, 밀 등의 이삭이 흑수병(黑穗病)에 걸려 새까맣게 썩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이삭을 농부들은 ‘깜부기’라 부른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문드러지도록 썩은 상태가 바로 ‘깜부기처럼 썩은 것’이다. 신라의 문희와 보희 자매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머리를 가졌다면 벌건 대낮에 태평로 대로변에서 소변을 본 그 여인의 머리는 어떨까. 수리먹었다, 구새 먹었다거나 차마 ‘깜부기 머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냥 캄캄하게 필름이 끊겼을 뿐이고 화살표 방향등 하나 없이 불빛이 나갔을 뿐이다. 그래서 생리 본능만이 처절히 남았던 것이다.

 왜 불 꺼진 캄캄한 머리들이 거리에 넘쳐나는가. 한길 건널목에서 삿대질과 함께 괴성을 연발하는 젊은 부인, 빌딩 처마 아래 퍼더버리고 앉은 채 마냥 희죽거리는 청년, 한없이 중얼거리며 방황하는 거리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중년 사나이…. 가장 큰 이유는 노숙자처럼 경제 불황과 가정파탄일지 모른다. 누가 저 ‘깜부기 증후군’을 막아 줄 것인가. 저들 헤까닥 돌아버린 모노드라마 주인공들을 연극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왜 그대로 두고 보자는 것인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대번에 해결해 결말을 지어 준다는 그 능력을 왜 썩히고 있는 것인가 묻고 싶다. 신에게나 의존하긴 너무나 가련한 존재들이다. 저들뿐이 아니다. 겉보기엔 멀쩡한 밤톨을 까보면 절반 또는 3분의 2 이상이 퍼슬퍼슬 썩어 있어 버릴 수밖에 없듯이 겉이야 멀쩡한 두뇌들도 흔하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일수록 사이코 기질이 있고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유사한 특징이 있다”는 게 영국의 심리학자 벨린다 보드 교수의 주장이다. 비뚤어진 자기애성(性) 성격장애, 강박성, 완고함, 독불장군 식 독재성, 공격성 등.

 필름이 끊기고 캄캄하게 불이 나간 머리들, 거리의 깜부기 증후군을 줄이는 길이야말로 복지국가, 지상낙원으로 가는 진입로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