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때마다 쏟아지는 공약만 제대로 지켜도 복지사회 건설은 물론 나라살림도 경제도 걱정이 없다. 그러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은 더욱 깊어진다. 그 결과 유권자는 공약을 보고 정당이나 인물을 선택하지 않고 순전히 정당과 인물대결 구도로 갈려 한표를 행사한다. 재·보선 투표율이 낮은 것도 이런 대결 구도가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일게다.

 10·26 재선거가 다가오면서 해당 선거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의 선거지원 열기가 높아가고 있다. 이번 선거로 민심을 가늠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차기 지방선거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공약도 양산될 것이고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역 현안이 공약의 윗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경기도에서 치러지는 부천과 광주선거는 어떨까. 부천시 원미갑 재선거를 들여다 보자. 모든 후보가 화장장(추모공원) 건립사업 절대반대를 공약하고 나섰다. 현안 사업이기는 하나 충분한 주민의견 수렴이나 심도있는 입지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 이유다. 인근 시와의 빅딜 등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부천이 혐오하는 시설을 선뜻 받아들일 인근 지자체가 어디 있겠나. 또한 인터넷 게임 중심지, 첨단산업단지 유치, 서민을 위한 무상의료·무상급식, 낙후 지역발전 등 하나같이 달디 단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광주도 친환경 미니도시유치, 복선전철, 정보통신연구단지설립 등 공약의 달기가 부천 보다 못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약(空約)의 남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행과 검증시스템을 당차원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중 하나이다. 당 정책위가 공약이행을 주도하고 외곽의 당 연구소가 이를 평가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또 각 정당이 '지킬 수 있는 공약’ '책임지는 공약’을 생산하는 '매니페스토’

(Manifesto, 유권자에 대한 계약으로서의 선거공약)의 도입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현이 상당기간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추상적이고 구체성을 상실한 공약이 아니라 우선 순위, 시한, 재원조달 등이 명시된 '대국민 서약’ 성격의 공약을 내놓아야 정치에서 멀어진 민심이 다시 모이고 국력이 모아져 사회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영국이 처음 시도한 후 미국 독일 일본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정책선거운동을 유도하고 공약의 책임성을 높이는 제도적 검증시스템을 갖추고 공약이행에 총력을 기울인다. 공약 이행 정도가 다음선거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현실이 이런 선진 공약이행 제도를 수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제도 도입은 염두에 두고 있으나 어떤 공약이 선거에 유리한지만 따지는 정치풍토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뼈저린 반성과 눈앞의 표를 의식하지 않는 대승적 사고가 이런 제도 도입의 바탕이지만 아직 그런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시민단체와 언론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즉 불합리 공약남발을 바로 잡고 실현가능한 공약을 검증할 객관적인 단체로 시민단체와 언론만한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본과 미국의 예를 봐도 시민단체와 언론의 적극적인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다. 일본에선 경제단체연합회에서 경제관련 공약을 평가하는 등 시민단체들이 적극 나서고 있고 미국도 시민단체와 언론이 공약을 평가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나라살림과 경제를 걱정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치를 진정한 일꾼으로 돌려 세워야 할때다.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가 몇%나 될까를 걱정하기에 앞서 무책임한 공약 남발을 근본적으로 막는, 선진정치제도를 빠른 시일안에 정착시키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 〈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