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동안 찌들었던 일본인들은 약관의 30대 벤처 기업가를 주목했다. 일본 최고 명문 도쿄대(東京大)출신의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 라이브도어그룹 회장이 인터넷 붐에 편승, 혜성같이 일본 재계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조직지향의 일본인들에 있어 호리에는 분명 이단아(異端兒)였다. 탄력을 잃은 일본 경제성장의 대안으로 ‘호리에’식 개혁 요구도 비등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민영웅 ‘호리에몽’을 연호(連呼)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1월 주가조작 혐의로 전격 구속되면서 일본 열도는 경악했다. ‘더블딥’우려가 컸음에도 지금 일본 경제는 순항중이다. 호리에쇼크는 일진광풍에 불과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구속되면서 재벌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1997년 외환위기이다. 멀쩡해 보이던 시중은행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는가 하면 대우그룹 등 잘나가던 재벌들이 줄줄이 좌초되면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졸지에 재벌들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치부되어 몰매를 맞아야만 했다. 그 와중에서 각종 재벌 문제들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왔다. 정경유착과 순환출자를 통한 문어발 확장, 상호지급 보증을 통한 차입경영 및 불투명경영, 편법상속, 재벌 총수들이 상식 이하의 적은 지분으로 경영을 전횡하면서도 책임은 지지않는 문제 등이었다.

정부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한편 재벌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착수했다.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림은 물론 재벌 총수들의 황제경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지주회사제, 집단소송제, 집중투표제와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하고 결합재무제표로 투명경영을 강요했다.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했으며 부채 비율도 획기적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재벌들은 이에 화답하듯 이구동성으로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선포했다. 정도(正道)경영을 외쳐대던 모습은 진지하다못해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국민들은 재벌 개혁을 위해 막대한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2003년 1월 신년사를 통해 “어떠한 형태의 금품이나 향응수수 행위를 배척한다”며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의 각오를 다졌다. 부채 비율을 크게 낮추고 사외이사제를 도입했다. 그 와중에서 현대차 그룹의 외형이 급속히 커졌다. 또한 자동차의 메카 미국에서 마켓쉐어를 늘리는 등 한국의 국위 선양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현대차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는 국민들을 아연케 했다. 경영진을 밥먹듯 갈아치웠을 뿐 아니라 정 회장 부자는 쥐꼬리 지분으로 경영을 전횡, 고전적인 일감 몰아주기 수법을 통해 50억원의 글로비스를 불과 4년만에 자산가치 1조원대의 대기업으로 부풀렸다. 그리고 이 회사의 상장을 통해 얻은 막대한 수익금으로 현대차 그룹의 편법상속을 시도했다. 문어발 경영도 여전했다. 현대차 그룹은 제철, 금융, 건설, 관광, 광고 등에 다각화함으로써 백화점식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순환출자 때문이었다. 더욱 경악한 것은 글로비스 등 비상장 계열사들을 이용하여 조성한 비자금을 산업은행 등에 살포, 계열사 위아와 아주금속의 채무 500여억원을 탕감받았다. 탕감된 채무 500여억원은 전액 공적자금으로 메워졌다. 채무자가 자기 지갑은 닫아둔 채 국민 세금으로 빚을 청산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현대차는 무늬만 투명경영이었지 내용은 구태(舊態) 그대로였다. 10년 불공 도로아미타불이었던 것이다.

메인 게임은 이제부터이다. 칼을 빼든 이상 비자금의 사용처까지 밝혀야하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다시 클로즈업될 예정이다. 다른 재벌로 수사 불똥이 번질 가능성도 크다.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세계 최고인 점을 고려할 때 경제가 다시 곤두박질할 개연성도 높다. 현대차 비리사건도 호리에쇼크처럼 일진광풍으로 끝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 한 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