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5·31 지방선거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선거연령이 만 19세로 낮아져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에 대한 관심도 확인 및 사상 처음으로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소정의 급여를 지급하는 탓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성과에 대한 중간평가와 아울러 내년 대통령선거의 판세를 미리 읽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결론이 난 듯했다. 언론은 물론이고 만나는 이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야당의 승리를 장담했었는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오비이락일까, 정작 선거판이 열리자 여당후보들의 선거운동은 소극적인 것처럼 비추어졌다.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 운동원들의 활동만 돋보였다. 공황상태에 빠져든 여당수뇌부의 모습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현정부가 어떻게 국정을 운영했으면 집권여당에 대한 여론이 바닥권에 머물고 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실업률 등 거시지표만 놓고 볼 때 참여정부의 성적표는 그런 대로 평년작수준이다. 수출은 사상최대를 기록함으로써 불어나는 경상수지흑자가 염려될 지경이었다. 코스피지수도 급등행진을 지속, 이 또한 유사이래 최대수준이다. 그런데도 현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추락하기만 했다. 원인은 ‘서민을 위한, 서민에 의한, 서민의 정부’를 표방한데 있었다. 지나치게 형평성에 집착한 나머지 부자들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진짜 부자들은 못잡고 유리지갑인 월급쟁이와 중산층만 옥죄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또 있다. 그간 현정부는 증세정책을 통해 마련한 세금과 차입 등으로 일자리 창출 등 서민생계 지원과 사회안전망 구축에 쏟아부었다. 그리곤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부동산투기와의 전쟁도 불사했다. 무려 35차례나 부동산대책을 쏟아냈으나 결과는 집값 앙등과 과중한 조세부담, 그리고 국가채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뿐이다. 그 와중에서 서민경제는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부가 불평등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우리 경제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조류(潮流)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됨으로써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코너로 몰렸다. 고유가와 원화강세는 이들 기업을 더욱 압박했다. 제조업의 고용 없는 성장도 계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청년실업률이 비등하고 비정규직도 꾸준히 늘어만 갔다. 대규모 유통업체들의 공격경영에 재래시장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으며 자영업부문의 공급과잉문제까지 불거졌다.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융단폭격은 건설경기를 크게 위축시켜 건설업에서만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뿐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 및 도하개발어젠다(DDA)농업협상에서조차 기선을 제압 당했을 뿐 아니라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우리 농촌은 외국농산물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결과는 상류층은 중산층으로, 중산층은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전(全) 계층의 하향이동으로 마무리되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소득중간값의 150%이상인 상류층은 2003년 22.7%에서 2005년에는 21.8%로 줄었으며 70~150%인 중산층도 52.4%에서 51.2%로 줄었다. 반면에 70%미만인 중하층과 빈곤층은 24.9%에서 27.0%로 부쩍 늘었다. 실직가장수가 85만명을 넘어섰으며 전체 도시근로자가구의 60%는 지난 외환위기 때보다 가계수지가 악화되었다. 더욱 염려되는 것은 3개월 째 경상수지 적자행진이 지속되는 등 수출전선에서도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건도 큰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값 잡기에만 올인, 부동산 거래의 실종은 물론이고 건설경기마저 더욱 위축시킬 판이다. 이러니 이번 지방선거결과는 당초부터 ‘뻔할 뻔’ 자였던 것이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이 한 구(수원대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