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7시. 금세라도 비가 오려는 듯 천보산 능선에서 바라본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경기북부에서도 산세 험하기로 이름난 곳이지만 다른 곳에 비해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지 않아 나무와 풀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14대 선조의 후궁인 정빈 민씨를 비롯해 제7자 인성군, 손자 해원군, 증손 화릉·화창·화춘군 등 왕손의 묘가 곳곳에 자리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산속을 조금만 오르다보면 곳곳에서 고통어린 상처들을 쉽게 볼수 있다.
산 입구를 지나 숲속을 50여m 정도 지났을까? 소나무 수십그루가 철사줄에 얽매인채 썩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년전 몇겹의 철사줄에 살이 패어가던 그 소나무도 뿌리까지 내보인채 기울어져 있었고 손으로 건드리자 소나무 껍질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이들 나무들은 캠프 시어스가 주둔하면서 수십년간 기지 철책을 지탱하던 철사줄이 매여 있었다.
산 중턱에서는 또다른 '참상'을 목격할수 있다. 천보산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절벽 바위에는 족히 수㎞ 떨어진 곳에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의 미군부대 마크(가로20m 세로60m)가 눈에 들어왔다.
또 다른 능선 정상 부근 바위에도 군데군데 분사식 페인트로 마구 그려 놓은 낙서자국이 선명했다. 알수없는 영문글자와 그림들이 그야말로 무방비상태의 바위를 마구 훼손하고 있었다.
수십년간 천보산 자락을 점령해온 캠프 카일과 캠프 시어스로 인해 천보산의 자연환경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천보산을 비롯해 의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도봉산과 수락산 자락에서도 캠프 잭슨, 캠프 스텐리 등이 주둔하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파괴'의 흔적을 발견할수 있다. 수락산 중턱 바위에는 부대마크로 추정되는 알수 없는 그림과 낙서들이 아직까지 생생히 남아 있고 도봉산 또한 미군들에 의한 훼손이 허다하다. 게다가 도봉산, 수락산, 천보산 등에 주둔한 부대 주변에는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됐을 뿐 아니라 숲이 울창해 실제 환경 훼손 실태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민 최모(69·의정부시 금오동)씨는 “바위에 페인트로 칠해 놓은 낙서들은 빗물 등 자연적으로는 쉽게 지워지지 않아 특수한 제거작업이 필요하다”며 “눈에 보이는 곳도 이정도로 심하게 훼손됐는데 보이지 않는 곳은 분명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위에 그려진 낙서들 가운데 일부에서만 '지우다 만' 흔적이 있을뿐 어디에도 원상복구된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미군은 물론 행정기관들 역시 변변한 항의한번 못한채 죽어가는 자연을 방치하고 있다.
주민 김모(37·의정부시 고산동)씨는 “산 전체로 피해가 더 악화되기 전에 강력한 행정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미군에 의한 훼손부분에 대해 관할 당국이 앞장서 원상복구조치를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군철수특별기획] 부대주변 산 훼손실태
입력 2005-07-14 00:00
수정 2021-09-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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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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