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이 넘게 미군이 있었다. 길고 긴 시간만큼 곳곳에 '한미친선'의 상징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한미친선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그 많던 흔적들도 이제는 도심속 흉물처럼 잊혀지고, 사라지고 있다.
36년간 미1군단 대민지원 행정보좌관 업무를 맡다가 지난 1999년 퇴직한 문승덕(71)씨.
미군의 원조물자를 한국 사회에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던 마지막 한국인이다. 퇴직전 그의 마지막 직책은 '주한미군 의정부지구 위수사령부 민사관'. 문씨는 “지난 63년 미 육군 부관학교를 졸업한 뒤 미1군단 대민지원 행정보좌관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며 “미국의 잉여물자가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던 60년대, 미군의 원조물자를 통해 한국 사회 발전을 지원하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문씨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대민지원사업은 의정부시 '롸우니로'(현재 의정부공고 앞 가릉로) 건설사업. 문씨는 “70년 당시 1군단장인 에드워드 엘 롸우니 장군이 미36공병단 장병들을 투입해 최신형 장비로 진흙펄을 걷어내고 모래와 자갈을 다져 아스콘을 덮어 만들었다”며 “변변한 도로 한곳 없던 의정부에 처음으로 들어선 아스팔트 도로”라고 밝혔다. 문씨는 “미군의 공사장면을 보기 위해 주민들이 몰려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도로가 완공된뒤 시측은 1.5m 높이의 작은 기념비를 세웠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현재 롸우니로는 가릉로로 바뀌었고 기념비는 공원 한구석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씨는 “현재 미군이 떠나고 있지만 50여년이 넘게 미군들과 몸을 부딪히며 살아온 입장에서 볼때 어려울때 받았던 역사의 흔적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역사성을 갖춘 흔적들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반면 쓸모없는 돈만 날린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미군철수뒤 애물단지로 전락한 파주시 문산읍 캠프 게리오엔의 50억원짜리 다리가 그것이다.
2000년 12월 완공한 캠프 게리오엔내 다리는 파주시가 수해예방을 위해 문산읍 일대 동문천 둑높이 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군측의 요구로 신설된 것이다. 당시 미군은 탱크 등 군시설물 통로가 용이한 다리를 짓겠다며 지자체에 50억원의 공사비를 요구했다. 파주시는 미군 요구액의 절반이면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며 직접 공사를 제의했으나 미군측은 소파규정의 원인자 부담원칙을 들어 사업비만 요구했다. 결국 미군이 파주시의 돈을 받아 설계는 물론 공사자재까지 모두 미국에서 공수해와 다리를 준공했다.
그러나 파주지역 미군이 철수하면서 불과 4년여만에 통행도 없는 빈 다리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파주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막대한 국고가 낭비됐다는 비난의 소지도 있으나 당시로서는 수해예방 차원서 어쩔수 없이 다리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미군철수특별기획] 사라져가는 '한미친선' 흔적들
입력 2005-07-26 00:00
수정 2021-09-0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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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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