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들이 국립해양과학관 유치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해양과학관은 해양도시인 인천이 진작 갖추고 있어야 할 시설중의 하나다. 해양과학관의 입지조건상,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부산이나 여수에 비해 인천이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음은 분명하다.

인천광역시 자체인구 260만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2천300만명의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천국제공항과 연계하여 대규모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 단시일 내에 국제적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다. KDI나 해양수산부의 실무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국내외적 접근성과 자립 가능성, 발전 잠재력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인천에 한국해양과학관의 효시인 초대형 수족관이 90여년 전에 이미 건립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인천수족관'은 공진회 행사의 일환으로 1915년 8월20일에 인천 축항 부근의 매립지에 건립되었는데, 수족관의 내부에는 총 22개의 대형 수조(水槽)에 수백종의 진귀한 해양동물을 전시하였다. 야외의 커다란 연못에는 대형 어류를 전시하였으며 부대시설로 휴게실과 귀빈실, 식당과 화장실을 갖추었다 하니 당시로서는 굉장한 시설이었겠다.

'인천수족관'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인천으로 몰려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족관 관람객들을 안내하기 위해 축현역(동인천역)과 인천역에 배치된 안내원들만 70여명이나 달했으며, 이들은 수족관 관람을 끝낸 관광객들에게 인천항만 시설과 만국공원(자유공원), 관측소, 인천항에 정박중인 군함, 송림동의 수도시설도 소개하였다고 한다.

인천수족관이 개관한 며칠 뒤에 희한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인천 앞바다에서 큰 고래 한마리가 어부들의 그물에 걸려 든 것이다. 산 채로 잡힌 이 고래는 인천수족관 연못에 넣어 전시되었는데, 그날부터 수족관 최고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매일신보'에 의하면, 당시의 관람객들은 온갖 해양동물로 가득한 인천수족관을 '용궁'의 재현인 것처럼 진기하게 여겼다 한다.

한 세기 전 인천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던 '해양체험행사'를 상기하면 지금의 인천항 일대는 참으로 황량하다. 해수욕객이 득실거리던 월미도 해변, 물위에 뜬 음식점 용궁각, 해수 목욕탕(潮湯) 등은 간 곳이 없다.

인천시민들은 국립해양과학관 유치운동을 계기로 해방 전 한국 최고의 근대적 종합레저타운이었던 이 일대의 영화가 재현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운동을 더 힘있게 펼치기 위해서는 건립부지를 둘러싼 이견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 인천의 보배이자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인 월미공원 내에 대규모 시설을 건립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임해공원인 월미산은 그 자체로 천혜의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쓰레기산을 '꿈의 경기장'으로 전환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나, 시드니 올림픽파크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버려둔 곳이나 공해로 찌든 곳을 '생명의 땅'으로 되살리면서 세워진 시설들은 두고두고 만인의 갈채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대안을 당장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온 인천시민들이 흔쾌히 동의하는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먼길을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건립부지에 관한 기존의 계획에 얽매이지 말고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한편 해양과학관의 입지로 볼 때, 인천이 명백한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정치적 판단이 끼어 들어 일을 그르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유치운동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관광학회의 설문조사 결과 수도권 주민들은 해양과학관 건립후보지로 인천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해양교육과 관광의 기념비적 사업이 될 해양과학관 인천유치를 성사시키기 위해 인천시민들의 서명과 함께 수도권 주민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이다./김창수(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