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과 사리포구
허기진 영혼과 일상의 권태를 못견뎌 하며 느닷없거나 뜬금없이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를 타봤던 청춘들은 또렷이 기억하리라. 덜컹거리며 느릿느릿 달리는 협궤열차의 겉모습과는 달리 기차 안 풍경은 마주보고 앉은 사람들의 낯설지 않은 시선과 서로 아는 사람들의 왁자한 인사 속에 비릿한 새우젖 냄새까지 하나가 되어 흘러갔다는 것을.
수원에서 출발하여 사리~원곡 등 지금의 안산지역 연안을 따라 인천까지 이어진 수인선은 일본자본에 의한 조선 수탈의 상징적 존재였다. 경동철도(주)가 공사에 착수한 지 2년만인 1937년 8월6일 개통되었는데, 이 때는 만주침략과 중일전쟁으로 일본 군수업자와 산업자본가에게는 호시절이었다. 이미 1931년 수원에서 여주까지 개통된 수여선(水驪線)과 수인선을 연결해 하루 5번씩 운행함으로써 경기내륙의 질 좋은 쌀과 군자만 일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쉽게 인천으로 반출하고 일본제 상품들을 내륙 깊숙이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웃한 대도회 인천과 수원을 나드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이 협궤열차는 해방 이후에도 고작 부천 가는 버스 외에 변변한 버스노선이 없었던 고즈넉한 안산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향수를 자극하는 매개가 되었다. 사리와 소래포구는 수인선 덕분에 싱싱한 갯것들을 수원과 인천 사람들에게 팔 수 있어 명성을 얻었다. 사리를 비롯한 경기연안 포구들의 주요한 생계는 새우잡이였다. 오뉴월에 잡은 새우는 포구에 닿자마자 인근 농촌마을 아낙들의 손에 의해 대·중·소로 분류되는데, 새우 이외의 꽃게를 비롯한 바닷고기들은 '잡어' 취급을 받아 아주머니들이 가져온 함지에 품삯으로 얹혀졌다. 분류된 새우는 곧바로 염장을 하여 새우젖이 되고 꽃게를 비롯한 나머지 것들은 포구 인근 마을에서 꽃게찜이나 생선구이가 되었다. 하루만 지나도 상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바로 먹어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리나 소래포구는 새우 뿐 아니라 꽃게와 생선들도 도회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곧장 팔 수 있어 여타 포구보다 흥청거리게 되고, 인근의 배들도 사리와 소래포구에 닻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고잔신도시
서해안의 역사는 아주 오래 동안 개펄을 막아 논을 늘려온 세월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안산은 개펄을 막아 세워진 도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전철 고잔역에서 중앙역~한양대역을 잇는 남쪽,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쯤 되는 드넓은 평야가 '고잔들'이다. 서해안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마을 이름이 '고잔'이다. 고지 밖의 '곶밖', 혹은 '꽃밭'과는 달리 고지 안쪽의 안온한 마을이라는 뜻일 것이다. 안산의 고잔도 예외가 아니다. 고잔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것을 일제시기에 막아 이 일대에서 가장 큰 벌판이 되었고 그 뜰의 동남단으로 유명한 사리 포구가 위치해 있었다.
그 사리포구가 있던 자리는 호수공원이 되었고 안산에서 논이 가장 많아 살기 좋았던 고잔들은 1992년 이래 고층아파트가 들어 찬 고잔신도시가 되었다. 전혀 바다와 관계없을 것 같은 와동도 고깃배가 들어오던 방죽마을이었고, 지금의 공단역 일대도 둔배미라는 큰 포구였으며, 시청 동쪽 성포동은 전통시대부터 이름난 포구였다. 따라서 안산을 동서로 관통하는 전철 안산선의 남쪽, 즉 안산시의 거의 절반이 바닷물이 들락거렸던 땅이었던 셈이다. 개펄이 논으로, 다시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상전벽해의 역사적 변화를 안산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안산, 한국산업사회의 바로미터
수인선의 혜택을 받는 몇몇 포구를 제외하고는 여느 서해안 마을들처럼 반농반어의 한적한 마을이었던 시흥시 수암면과 군자면, 화성시 반월면 일대는 1976년부터 시작된 반월 신공업도시 개발로 하여 안산은 시작되었다. 호주의 캔버라를 모델로 자족형 도시로 계획된 안산은 1977년 이래 반월국가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지금은 국회의원을 4명씩이나 뽑는 경기도 제일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반월공단건설 이래 30여년간 안산의 변화와 발전은 한국 산업사회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연료가 연탄에서 석유제품으로 바뀌면서 강원도 탄광지역의 광부들이 대거 자리 잡은 곳도 안산이었고, 90년대 중반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한 곳도 안산이었다.
더욱이 시화공단이 조성되어 규모가 확대되면서 경기도를 대표하는 공업도시가 되었고, 경기남부지역에서 신갈~안산간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서해안 고속도로 등 가장 도로교통망이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안산은 또한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다. 안산역 앞 원곡본동사무소 일대는 국경없는 마을이 된 지 오래다.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중국 등 10여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수 만명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안산의 또 다른 자산이다. 안산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원곡이 전철과 공단이 조성되면서 상권을 다른 곳으로 빼앗기면서 공동화되
안산(4)-개펄위에 세운 新산업도시
입력 2004-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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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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