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동안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의 3분의 2가 해외여행 및 유학경비로 소비되었다. 어렵게 100원을 벌어 이중 66원을 해외소비로 소진한 셈이다. 자원빈국인 우리 입장에서 양질의 노동력을 만들기 위한 유학자금의 지출쯤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단순히 먹고 즐기는 식의 해외여행경비로 대부분을 지출했다는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해외여행이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이니 해외여행수지가 5년 연속 적자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만 해외여행지출로 약 29만개의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었다며 정부당국자는 벙어리 냉가슴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내국인들의 해외투자도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LG, 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는 올 상반기에만 38억여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1.4%나 증가했다. 개인 및 중소기업들의 해외투자분까지 합치면 약 71억달러로 지난 2002년 대비 2.48배나 커졌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이 정도쯤이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또한 수출경쟁력 제고 및 수출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동안 외국인직접투자규모는 49억여 달러에 불과, 사상최초로 내국인들의 해외직접투자가 외국인직접투자를 추월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외국인직접투자는 지지부진한 반면에 내국인들의 해외직접투자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내자본의 국외유출 및 해외소비가 급증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 정부 들어 기업관련 규제건수는 7천715건에서 7천926건으로 늘어났다.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창출이 화두로 대두되면서 각국은 저마다 규제를 완화하는 등 친기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혈안인 터에 우리나라는 역(逆)으로 기업들을 더욱 옥죄니 어느 기업이 국내투자를 늘리겠는가. 국내소비도 매한가지이다. ‘된장녀’, ‘고추장남’ 등 국민들의 소비수준은 이미 세계 최정상급인데 비해 이 정부의 눈높이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수준이다. 코드가 맞지 않으니 국내 서비스산업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차제에 이 눈치 저 눈치 보기 싫은 부자들부터 앞장서 해외소비를 늘렸던 것이다. 개인들의 해외부동산 구입붐도 같은 맥락이다.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부동산시장을 초토화시킨 나머지 국민들의 부동산수요는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국외로 이전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국내고용의 일등공신역할을 했던 건설업경기까지 죽임으로써 국민들은 이중, 삼중의 경제적 고통을 받아야했다.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만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천렵(川獵)을 하려면 물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포위망을 구축한 다음에 조심스럽게 족대 쪽으로 고기들을 몰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오히려 이전 정부들이 쳐놓은 포위망마저 제거한 채 천렵을 했다. 마치 바다에서 족대질하는 형국이다. 어느 물고기가 “나 잡아가라”며 스스로 족대안으로 들어올까. 이러고도 내수경제가 살아나길 기대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레스터 더로 교수는 “세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이후에도 세계화작업은 부단히 진행될 것으로 예단했다. 국부(國富)의 해외유출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내수경기는 더욱 가라 앉을 수 있다. 양극화문제도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경제는 경제주체들의 심리상태에 따라 좌우되는데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경기전망은 아시아태평양지역 13개국 중 가장 나쁜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죽했으면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경제 20년 재조정’보고서에서 “선진화를 달성하기도 전에 조로(早老)현상을 보이는 등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며 경고까지 했을까. 그런데도 이 정부는 아직도 평등주의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죽 쒀서 개 주는’ 국면이 계속될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 한 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