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 왜 강남에 부인 명의로 아파트를 두 채나 사두고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가 “지금 집을 사면 낭패”라는 글을 쓰기 얼마전에 그 중 한 채를 판 이유도 알 수 없다. 정승도 개인사정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의 부동산 거래엔 필시 개인적인 곡절이 있을 터이다. 56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고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편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말들이 많지만 이 대목 역시 관심없다. 그저 괴이쩍을 따름이다.
정작 내가 궁금한 점은 부동산에 관한 이중심리다. `집값은 분명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 아파트시세가 떨어지는 건 안된다.' 바로 이런 심리가 달랑 아파트 한 채가 전재산인 샐러리맨이건, `떴다방'이 직장인 투기꾼이건 지금 보통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다. 상호모순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이 이중심리가 존재하는 한 집값안정은 공염불이 아닐까. 이 수석은 그 실증적 사례를 절묘한 타이밍에 보여주었을 뿐이다.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닮은꼴 이중심리가 작동한다. `공교육은 정상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이 모순을 풀지 않는 한 제아무리 훌륭한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이 나와도 거품확산과 사교육팽창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면 지나친 판단일까. 공직자 47%가 `버블 세븐'에 집을 갖고 있고, `고교 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고위 관료들이 자녀는 외국에 유학 보내는 현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건 저 이중심리 아닌가. 그러니 장삼이사는 오죽하겠는가.
사실 이러한 이중심리는 숱하게 지적돼왔다. 문제는 이 모순을 어떻게 바로잡아 나갈 것이냐다. 거칠게 나누자면 여기엔 두 가지 해법이 있는 듯하다. 첫째는 흘러가는대로 두자는 주장이다. 참여정부 들어 여덟 번이나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그 때마다 뛰었고, 입시와 교육 정책도 끊임없이 손질했지만 공교육은 더 무너지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시장경제'와 `자율'이라는 명분 하에 제기된다. 영어로 `Let it be'요, 순 우리말로 `냅둬유'다.
이 주장엔 분명 일리가 있다. 뜻이 아무리 웅대해도 한강물을 거꾸로 돌릴 수야 없다. 더구나 정책추진력 자체가 고갈된 참여정부가 아무리 용을 쓴들 상처만 덧낼 가능성이 크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것도 대통령 탓이라는 웃지못할 우스개마저 나도는 마당이다). 부동산이든 교육이든 거품이 커지다 커지다 결국 터지면 무슨 수가 나도 나지 않을까. (옴니암니 합리적으로 세밀하게 따져보는 걸 귀찮아하는 우리 국민성(?)에도 맞는 해결책이다)
하지만 거품이 커질대로 커지다 꺼졌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올까. 누가 상투를 잡고, 누가 쪽박을 차든 정말 상관없을까. `구제금융 사태' 때처럼 금융과 경제 자체가 함께 가라앉으면서 중산층은 물론이고 전·월셋집에 사는 서민들에게 더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해도? 학교 교육은 완벽하게 껍데기만 남아도? `더욱 강력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두번째 주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주장에도 분명 경청할 대목이 있다. 파국을 맞고 나서 혁명을 하기 전에 과감하게 대수술을 미리 해서 혁명을 막자는 뜻이므로 오히려 첫번째 주장보다 덜 과격한지도 모르겠다. 국가는 `시장경제'와 `자율'이 아예 작동불능에 빠지지 않도록 조정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에 입각한 정책 또한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물론 정답은 양극단 중간지점 어딘가에 있을 터이다. 하지만 정책결정 이전에 국민 각자가 자기 마음속의 모순된 심리 중에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부터 헤아려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부동산 안정을 더 원하는가, 내 집값상승을 더 원하는가. 공교육 정상화가 먼저인가, 우리 애 과외 교습이 먼저인가.
/양 훈 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