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무선전화기가 국내에 첫 선을 보이던 무렵 휴대전화는 극소수 가진 자들의 전유물 쯤으로 치부되었다. 단말기 값은 물론 요금이 너무 비싸 서민들은 언감생심이고 웬만한 중산층도 휴대전화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휴대전화 가입자수가 드디어 4천만명을 돌파, 우리나라 인구 10명중 8.2명이 지니고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이젠 휴대전화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불과 22년만에 이룬 놀라운 성과이다. 기술변화가 수요를 증가시킨다는 고전적인 경제이론을 입증했다.

이뿐 아니다. 그간 정보통신기술의 급신장에 힘입어 오늘날 휴대전화는 단순한 무선전화기에서 탈피하여 각종 정보와 지식의 제공은 물론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화상통화와 TV시청도 가능한 다기능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96년에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들은 외국의 선발업체들을 압도했다. 2004년에는 국산 CDMA단말기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42%로 세계1위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삼성전자는 지멘스를 제치고 세계3위의 휴대전화메이커로 급부상했다. 덕분에 휴대전화는 케쉬카우(cash cow) 상품으로 부상함으로써 수출 3천억 달러시대를 여는데 일조했다. 휴대전화는 97년 외환위기로 절망하던 한국인들에게 IT강국의 희망을 환기시켰을 뿐 아니라 세계만방에 ‘한강의 기적’을 재차 확인시켜준 일대 쾌거였다.

그 와중에서 부작용도 많았다. 가입자들의 신상정보가 범죄에 노출됨으로써 스팸메일이 범람하고 불법복제단말기 등 선의의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과도한 통신요금 탓에 가정이 파산하는가 하면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발생했다.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나 이 정도는 새로운 문명이기(文明利器)를 접하는데 따른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으로 치부하자.

정작 걱정은 휴대전화가 서민생계를 핍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터를 빈번히 이동해야만 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이나 행상 등 고단한 서민들에게 있어 휴대전화의 효용가치는 특히 높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기능이 점차 추가되면서 요금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 올 상반기 가구당 월평균 휴대전화요금은 5만2천원으로 전체 가계지출의 3%, 전체 통신비의 59.3%를 차지했다. 덩달아 통신비지출이 외식비 및 숙박비지출, 교육비지출, 의료보건비지출 등을 능가하는 사상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이다. 저소득계층일수록 휴대전화요금이 생계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하위 20%계층의 휴대전화비 지출은 가계총수입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 자녀 2명을 둔 한 맞벌이 저소득가정은 월수입의 16%를 휴대전화요금으로 지불하는 사례도 확인되었다. 서민들에게 있어 휴대전화는 필요악이다. 휴대전화가 서민가계를 압박하는 요인이 또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 값이 보통 몇십만원대인데 반해 수명은 3~4년에 불과하다. 값에 비해 수명이 너무 짧은 것이다. 감가상각비까지 고려할 경우 휴대전화로 인한 서민가계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작금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 등으로 서민계층의 실질소득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나 휴대전화로 인한 지출 폭은 점차 커져 시민들의 생계는 더욱 곤궁하다. 이런 지경이니 시간이 흐를수록 소득계층간 양극화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정보유목민(digital nomad)시대에서 정보격차(digital divide)는 소득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새로운 문명이기를 대하는 서민들의 고민은 점차 커지고 있다. 휴대전화 4천만대 시대를 맞아 그 빛이 유난히 밝은 만큼 그늘 또한 못지않게 짙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 한 구(수원대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