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 주역들의 첫 마디가 이랬다. 즉 부패와 무능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 군부가 일어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혁명공약에서도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새로운 기풍을 진작한다"고 다짐했다.
당연히 부정부패는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후 그들에 의해 가장 먼저 저질러진 게 대형 경제비리사건들이다. 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파친코 사건 등이 그것이다. 후진국 특유의 권력과 부패 고리를 그들도 여간해선 떨쳐버리기가 쉽지않았던 모양이다. 그 뒤로도 군사정권하에서의 크고 작은 부정부패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국공유지 불하 의혹사건, 6대 재벌기업 금융특혜 사건, 율산파동 등 이루 다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리고 마침내 두 전직 대통령들의 거액 비자금 사건까지 일어났다.
수십년 군부통치가 물러나자 이제부터야말로 그같은 부패구조도 말끔히 청산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계속 이어진 사정(司正)작업에도 불구, 날이면 날마다 무슨 무슨 게이트, 무슨 무슨 리스트 등 온갖 비리사건들이 온통 세상을 뒤흔들어왔다. 거의가 칙칙한 정경유착 및 정·관계 로비의혹 등을 남기면서…. 지금 온 나라를 강타한 바다 이야기나 제이유(JU)게이트 등만 해도 그렇다. 얼마나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개입됐는지, 아직은 윤곽조차 그리지 못할만큼 숱한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하도 비리가 많다 보니 이젠 웬만큼 큰 사건이 아니면 국민들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다만 맥없는 국민들로선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에 분하고 억울해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남들은 부정으로 치부할 때 자신은 무얼했나 싶고,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자리에 있지 못한 처지를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차라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정 요령을 가르치자"고 열변을 토하는 이들도 있다. 어차피 부패 척결이 불가능하다면, 부정을 몰라 손해를 보거나 바보가 되지않게 하기 위해서도 그 요령을 배우게 하자는 것이다.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부패척결을 국정지표로 삼아왔다. 그런데도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았다. 되레 더 극성을 부리고 지능화되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누구든 그럴듯하게 말만 앞세웠지 실천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실천은 커녕 그들 자신부터 앞장서 부패에 빠져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죽하면 대통령 아들들까지 구속되는 추태를 다 보여주었을까.
그래도 현 정부들어서는 좀 달라질줄 알았다. 유난히 개혁을 부르짖고 청렴을 강조했기에 그랬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들 역시 부패의 유혹을 떨치기가 꽤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바다이야기나 JU사건 등에 이런 저런 인물들 관련 의혹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국민들은 그래서 더 큰 배신감을 느낀다.
많은 이들은 말한다. "부패를 국가생존의 문제로 간주하고, 싱가포르처럼 강력한 법을 만들자"고. 또 "독립적인 반부패 총괄기구를 만들어 수사권과 사법권을 부여하자"고도 한다. 부패만 척결될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인들 주저하랴. 하지만 아무리 좋은 법과 기구를 만든다 해도 이를 지키고 집행할 의지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더구나 이젠 말로만 개혁 개혁 하며 청렴을 외쳐대는 데엔 국민들도 신물이 났다. 거의 역대 정부마다 그래오던 것을 실컷 경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야말로 소위 권력의 자리에 있는 분들부터 이를 실천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이는 특히 차기 집권을 위해 벌써부터 부산한 정치인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박 건 영(논설실장)
말만 앞세우는데엔 신물났다
입력 2006-12-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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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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