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코스피지수가 2000문턱까지 육박, 우리나라는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1천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규모면에서 미국·프랑스·일본에 근접했다. 그럼에도 증시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식기는 커녕 한여름 불볕더위마냥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도처에서 즐거운 비명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6년 동안 우리나라 주가가 197.5%나 상승하면서 최대 재벌 오너중 10명의 보유주식 평가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은 사상 최초로 3조원대 주식부자에 등극했다. 1천억원대 주식졸부들 수도 100여명이 훨씬 넘는단다. 심지어 14살에 불과한 전동엽(전윤수 성원건설 회장 아들)군도 1천억원 거부반열에 올랐다.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진 기업 대주주들의 주식평가액이 최소 수백억원이다. 이들은 '신의 자식'들인 만큼 막대한 부를 누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평범한 소시민들도 증시활황대열에 동참, 사방에서 '억, 억'소리가 들린다. 증권사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익금을 쓸어 담느라 여념이 없으며 시중은행들도 '봉이 김선달'식 펀드판매로 희희낙락이다. 한달에 1억원이상을 버는 증권맨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증시에 올인하려 직장을 그만 두는 월급쟁이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가정주부들이 투자자금 조달을 위해 적금을 깨거나 사채시장 주변을 기웃거리고 심지어 전세금을 주식에 '몰빵'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투기와 작전·횡령·불성실공시 등의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고 '쪽박'을 찬 개미투자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 남의 나라 이야기다. 증권사에서 종류를 불문하고 아무 주식이나 사주면 그저 감지덕지일 따름이다. 콜금리 인상과 증권사 사장단들의 경계경보 등에도 불구하고 주식 계좌수는 하루 1만개씩 증가, 한여름 밤의 불나방처럼 '묻지마'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펀드수탁고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증시광풍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외 투자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장밋빛 청사진을 쏟아내는 터에 정부마저 하반기 경기를 낙관하는 때문이다.

그럴수록 이 대열에 동참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스트레스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직장이든 아줌마들 모임이든 두 사람 이상 모이기만 하면 주식이나 펀드타령이고 이에 끼어들지 못하는 자들은 바보취급을 받기 일쑤다.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에서조차 패가 갈리는 경우도 자주 확인된다. 소시민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

그동안 절대 다수의 선량한 소시민들은 워커홀릭처럼 일에 탐닉하는 한편 마른 행주 짜듯 절약한 돈을 예금이나 적금으로 묶어 두곤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목돈이 되면 이를 몽땅 집 늘리는데 투자했다. 가난이 죽음보다 두렵고 집없는 설움이 너무 절절했던 탓이다. 그 와중에서 프로테스탄티즘적 근면성실이 보편적인 경제문화로 자리매김, 나름대로 한국자본주의의 건전성이 담보될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의 높은 저축성향은 과거 압축성장시대의 시드머니역할을 했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세상이 변했다. 유동성 함정에 빠진듯한 금리가 도저히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터에 참여정부는 과도할 정도로 부동산에 대한 융단포격을 가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국내외 헤지펀드들의 훌륭한 먹잇감으로 작용했다. 부동자금의 증시쏠림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런 지경이니 개인들의 포트폴리오도 유동성이 큰 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퇴직금 이자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가던 노인들에겐 한마디로 절망이었다. 수많은 서민들이 졸지에 쉰세대로 전락했으며 근검절약은 한물간 유행가 가사쯤으로 치부됐다. 현실은 소시민들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했던 것이다.

자금흐름의 선순환,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따른 내수부진 만회 등 주가 2000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러나 그 빛만큼 경제불안정성 확대, 사회적비용급증 등 그림자 또한 덩달아 커지는 것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