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면서 고함을 질러보는 일은 1월1일에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추억거리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조금씩 붉게 물들어간다. 수평선 위로 새빨간 덩어리가 떠오르고 눈이 부셔서 저절로 눈을 감게 된다. 이런 벅찬 감동으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바다와 산으로 해맞이를 하러 가는 이유이다. 세계문화엑스포 유치성공으로 활기 넘치는 여수바다로 나선다.

해를 향한 암자 향일암(向日庵)은 단연 남해 최고의 해돋이 장소다. 바위틈을 비집고 오르면 기이한 절벽 위에 들어선 대웅전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사위가 어둑하다. 철썩대는 파도 소리만이 점점 긴박하게 귓전을 울린다. 마치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린 듯 두근두근 가슴이 설렌다. 마침내 붉은 기운이 수평선을 따라 길게 띠를 두르면 해돋이의 서막은 오른다. 밤톨만한 해는 시시각각 모양새를 달리하며 어느새 어둠을 갉아먹고 빨갛게 떠오른다. 새 생명의 탄생처럼 장엄한 순간이다.
여수 향일암은 삼면이 시원스레 뚫린 반도 끝자락에 바다 절벽의 요새처럼 들어앉아 있다. 일주문을 지나 291개의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앞을 막고 있어 길이 막힌 듯 보인다. 하지만 바위 틈 사이로 좁은 통로가 뚫려 있어 사람이 간신히 지날 수 있다. 이 길이 향일암에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 굴 같은 바위 틈새를 비집고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이는 곳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일출을 보기 위한 최고의 포인트로 손꼽히는 대웅전 앞마당에 서면 잠든 세상을 일으켜 세우듯 적막을 뚫고 웅장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처마 끝 풍경의 울림도 은은하다. 대웅전 옆길을 따라 올라가면 원효대사의 도량으로 알려진 관음전과 석불이 바위 절벽을 등에 이고 대해를 바라보고 있다. 이곳 역시 일출을 보기에 적당한 곳이다.
일출은 암자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 해가 떠오를 무렵인 오전 6시30분. 새벽잠을 설친 관광객이 삼삼오오 모여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만 불그스레할 뿐 해는 보이지 않았다. 짙은 구름이 커튼처럼 다도해를 뒤덮고 있다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다시 눈을 뜨면 벌써 해는 바다 위에 쑥 올라와 있다. 운이 좋다면 해가 바다와 하늘에 걸쳐 있는 '오메가'(Ω) 해맞이를 볼 수도 있다. 불과 몇 분 안에 해맞이는 끝이 나지만, 그 여운은 오래오래 남는다. 이 아름다운 감동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향일암에 가려면 마을 입구에 주차한 다음 마을까지 걸어 향일함에 올라가야 한다. 주차장에서 마을입구까지 약 15분이 걸리는데 아스팔트 길을 따라 간다. 마을에서 향일암까지 넉넉잡아 20분 정도가 걸린다. 계단을 계속 올라가야 한다. 향일암에서 내려와 가벼운 아침식사를 한 후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오동도로 간다. 오동도는 입구에서 걸어서 갈 수 있고 동백열차를 타고 가도 된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30~40분이면 돌아볼 수 있다.
#일출 관람 후 돌산도 구석구석 돌아보기
돌산도는 지난 1984년 돌산대교가 완공되면서 육지가 됐다. 돌산도 외곽을 잇는 해안도로는 약 60㎞. 우리나라에서 안면도에 이어 여덟 번째 큰 섬답게 봉황산(460m)·봉화산(412m)·천왕산(385m)·대미산(350m)·금오산(323m) 등 해발 300m가 넘는 산을 5개나 품고 있다. 도로는 해안과 이들 봉우리 사이를 달려 때로는 육지 한가운데 있는 듯하고, 또 한적한 바닷가를 달리는 느낌도 가질 수 있다.
돌산도 드라이브는 특히 가막만과 맞닿은 서쪽이 아름답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마치 커다란 호숫가를 달리는 기분을 전해준다. 가막만은 여수시·돌산도·금오도·개도·화양반도가 사방을 에둘러 작은 항구와 항로를 가리키는 등표 등이 없다면 커다란 호수로 착각해도 될 정도다. 바다임을 알리는 또 하나의 징표는 수면 위로 끝없이 펼쳐진 하얀 부표들이다. 비취빛 수면과 대비되는 부표들은 굴양식장이다. 바닷가에서 어린 굴을 키운 뒤 어느 정도 자라면 이곳으로 옮겨 본격적인 양식이 시작된다.

암자 뒤편은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입구는 아름드리 후박나무·소나무·동백나무 등이 우거진 수림을 만들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왼쪽 계곡을 따라 암자까지 이어진 오솔길은 길이는 짧지만 두텁게 쌓인 낙엽이 발에 밟힐 때마다 사각사각 기분 좋은 희망을 움트는 것만 같다. 온 바다를 선홍빛으로 물들이는 일출 사이로 분주하게 새벽 출어를 나서는 고깃배가 수놓는 풍경은 덤으로 만날 수 있는 겨울여행의 아름다움이다.
여행을 하면서 바다 해돋이를 맞이할 때처럼 숙연해지는 풍경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한 해의 문턱을 넘어서면 겨울여행은 특별하다. 짙푸른 바다를 홍시빛으로 물들이는 해돋이 여행은 감동을 품게 하는 희망발전소 같은 매력이 있다.
여행수첩/
■ 가는 길=(드라이브 정보) 호남고속국도 순천IC에서 빠져나와 순천 외곽도로를 타고 여수로 향한다. 17번 국도와 만나는 곳에서 좌회전, 여수를 지나 돌산대교를 건넌다. 17번 국도를 따라 죽포리까지 간 다음 '향일암' 입간판을 따라 좌회전하면 된다.
■ 맛집=여수의 겨울 별미는 금풍생이 구이와 서대회무침, 장어가 제철이다. 금풍생이 구이는 구백식당(061-662-0900)과 유화식당(061-662-2405)이 유명하다. 숯불에 노릇하게 구워낸다. 껍질이 다소 굵은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1인분 1만원. 서대회무침은 한 그릇이면 2명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1만원. 여수 시내 진남관 가까운 곳에 수산물 시장이 있다. 다양한 건어물을 살 수도 있다. 여수는 갓김치가 명물. 여수 갓은 매운 맛이 덜하고 줄기가 2배 이상 큰 것이 특징이다. 갓김치 공장(061-644-2185), 1㎏에 4천원.
■ 잠자리=향일암 인근의 숙소들이 모두 그러하듯 이 집도 식당과 숙박을 겸하고 있다. 돌산의 특산물 갓김치를 전문으로 판매한다.향일암 인근 귀족모텔(061-644-9743), 황토방모텔(644-9231), 백림모텔(644-4730), 다도해모텔(644-6345), 종점모텔(644-4737), 해뜨는 산장(644-3840)여수 시내 세종관광호텔(061-662-6111), 여수관광호텔(662-3131), 여수비치호텔(664-9626), 히딩크모텔(644-1685), 천마모텔(644-4665)
여행tip/
동백나무숲과 갯바위가 아름다운 오동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에 자리잡은 여수 시민들의 정신적인 고향이다. 육지에서 바다로 뻗은 768m의 방파제를 따라 오동도로 걸어들어가면 반짝이는 동백나무군락이 우선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책로를 따라 오동도 정상에 오르면 등대의 호젓한 멋을 감상할 수 있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겨도 좋고 해녀들이 잡아 올린 해삼, 멍게 등의 해산물로 입맛을 돋워도 행복하다. 문의:(061)690-7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