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미국 경제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와 이에 따른 금융시장 경색 등 신용위기로 요동을 치던 경제가 고용시장 불안과 소비 위축, 제조업 부진으로까지 확산되면서 경기 침체가 이제 우려를 넘어서 거의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등으로 입은 엄청난 손실 등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경제전망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이는 뉴욕 증시의 지속적인 하락세로 이어져 투자심리는 물론 소비심리까지 위축시키고 있다.

   다급해진 부시 행정부와 미 의회는 1천억~1천50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경기 부양책을 조만간 내놓기로 하고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필요할 경우 대폭적인 금리 인하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경기침체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지적들도 나오고 있다.

   ◇끝없는 부동산시장 침체 = 미국 경제를 하강추세로 몰고 가고 있는 부동산시장 침체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17일 밝힌 작년 신규주택 건설은 1980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해 집을 짓는 주택건설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이다.

   작년에 단독주택과 아파트 등의 신규주택건설은 125만3천채로 2006년에 비해 24.8%가 감소, 지난 80년 26% 줄어든 이후 연간 감소폭으로는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 12월 신규주택건설도 전월보다 14.2% 줄어 예상보다 감소폭이 컸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최근 발표한 지난해 11월 기존주택 잠정판매 지수도 전달의 89.9보다 2.6% 하락한 87.6을 기록했다. 11월 기존주택 잠정판매지수는 2006년 11월의 108.4에 비해 19.2%나 하락한 것이다.

   11월 신규 주택판매도 64만7천건으로 전월보다 9% 감소하면서 1995년 4월의 62만1천건 이후 12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주택건설과 판매의 침체 속에 부동산 가격은 추락을 계속해 작년 말 발표된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케이스-쉴러 미국 전국주택가격지수에 따르면 미국의 10대 도시 지역의 10월 주택가격은 10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1년 전에 비해 6.7%가 떨어져 1991년 4월의 6.3% 이후 1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최근 주택경기침체가 1981~82년의 심각한 불황이 오기 직전에 4년 연속 주택건설이 줄어들었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의 부동산시장 침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소비도 타격..실물경제 피해 현실화 = 주택가격 하락은 집 소유자들의 담보 대출 능력을 줄여 소비지출을 조이고 있고 소비 위축은 기업의 고용과 임금 상승 등을 억제해 이것이 다시 소비를 약화시키는 악순환 구조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고유가 역시 가계사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의 위축이 경제 전반을 침체에 빠뜨릴 가능성이 큰 가운데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 국제쇼핑센터협회에 따르면 작년 연말 쇼핑시즌에 소매업체들이 파격적인 할인과 영업시간 연장에 나섰음에도 11월과 12월 판매 증가율이 지난 200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2월 판매증가율도 대형할인업체인 월마트의 판매 증가에 힘입어 동일점포 기준으로 0.9% 증가하는 데 그쳐 7년 만에 최저 증가율을 나타냈다.

   유통업체들의 12월 매출 증가세가 둔화된 가운데 콜스의 12월 매출은 11% 줄었고, 백화점 메이시의 매출도 7.9% 감소하는 등 판매가 급감한 업체들도 잇따르고 있다.

   부자들도 지갑을 닫아 고급 백화점 노드스톰의 12월 매출은 4% 줄었고 고급 보석업체 티파니의 경우 구매자가 감소해 지난해 주당 순이익 전망치를 종전의 2.30달러에서 2.28달러로 낮췄다.

   경기전망의 바로미터인 소비자만족도도 급격하게 떨어져 퓨리서치센터는 경제에 대한 소비자만족도가 15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 같은 소비위축은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게 만들고 있다.

   전미소매협회(NRF)는 14일 내놓은 연례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상반기에 소매판매 부진이 두드러지면서 전체적으로 소매판매 증가율이 3.5%에 그쳐 3%를 기록했던 지난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할 전망했다.

   로절린드 웰스 NR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소비자들이 고유가와 주택경기 침체, 고용과 소득증가 부진 여파로 소비지출에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면서 경기침체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위축에 대한 우려 속에 제조업과 고용시장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걱정을 키우고 있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17일 발표한 1월 제조업지수는 마이너스 20.9를 기록, 이전 달의 마이너스 1.6에 크게 못 미쳐 제조업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가 마이너스를 보였다는 것은 조사대상인 펜실베이니아 동부와 뉴저지, 델라웨어주의 제조업체 대부분이 사업조건의 악화를 보고했다는 의미이며 하락폭이 확대된 것은 그만큼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옵셔네틱스의 애널리스트인 프레드릭 루피는 마켓워치에 "이날 필라델피아 제조업지수는 가장 비관적인 전망조차도 넘어서는 재앙이었다"고 말해 제조업 경기 악화가 주는 충격이 큼을 나타냈다.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작년 11월 무역적자가 631억달러로 2006년 9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도 제조업 둔화의 조짐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 노동부가 17일 발표한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는 1주일 전의 32만2천명보다 2만1천명이 줄어든 30만1천명으로 3주만에 처음으로 감소했고 작년 9월22일 이후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돼 고용시장이 아직 견고한 것을 보여줬지만, 최근 발표된 작년 12월 실업률은 2년래 최고치인 5%를 기록해 고용시장에 대한 불안감과 경기침체 우려를 가중시키기도 했다.

   ◇금융기관 모기지 부실 손실 눈덩이 =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모기지 부실로 입은 금융기관들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씨티그룹이나 메릴린치 등 월가 주요 금융기관들은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다.

   씨티그룹은 15일 지난해 4분기에 모기지 부실 등과 관련해 181억달러의 자산을 상각해 회사의 196년 역사상 최대인 98억3천만달러(주당 1.99달러)의 분기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었다. 씨티그룹이 분기 손실을 낸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메릴린치도 17일 작년 4분기에 98억3천만달러(주당 12.01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메릴린치는 또 4분기에 서브프라임모기지 등과 관련된 부실자산 및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115억달러를 비롯해 채권보증 계약에서도 31억달러를 상각해 총 146억달러의 부실자산을 상각했다.

   메릴린치는 이로써 지난해 3.4분기에 22억4천만달러의 손실로 역대 최대의 분기 손실을 낸 데 이어 2분기 연속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게 됐다. 메릴린치는 이 같은 분기 실적 악화로 지난해 연간으로도 77억8천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해 1989년 이후 18년 만에 첫 연간 적자를 냈다.

   JP모건체이스도 16일 지난해 4분기에 모기지 부실 관련 13억달러의 자산을 상각한 영향으로 순이익이 29억7천만달러에 그쳐 45억3천만달러였던 전년 동기에 비해 34%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은 16일 보고서에서 미국 내 금융기관들이 모기지 부실 사태에 따른 모든 손실을 아직 제대로 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현재 드러난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다급한 미 정부.의회 경기부양 카드 선택 = 경기침체 우려가 고조되면서 미 행정부와 의회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미 증시 불안 등 최근의 경제난과 관련, 18일 단기 일괄 경기부양책의 원칙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토니 프래토 백악관 부대변인이 17일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의회 지도자들과 약 30분간 대화를 갖고 침체국면에 빠져 있는 미 경기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협의했고, 존 호이어 공화당 원내대표는 "미 경기 부양을 위해 총 1천억∼1천500억달러를 투입하는 방안이 정부 관리들과 의원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부양책에는 세금 환급을 통한 소비 진작, 실업자 지원, 난방비 지원, 기업 감세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RB도 금리 추가 인하도 고려되고 있다.

   버냉키 FRB 의장은 이날 하원 재무위원회에서 미국경제가 침체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속한 재정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면서 의회에 행정부의 재정정책 추진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필요하다면 추가 금리 인하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부동산시장의 요동과 고유가 등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이 같은 경기 부양책만으로 쉽게 걷히기에는 너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부양책이 상반기 안에 경제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메릴린치의 북미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문제는 경기침체가 올 것인가가 아니라 경기침체가 얼마나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경기침체를 기정사실화하고 FRB의 금리 인하 조치 등이 이뤄져도 그 효과는 올해 말이나 내년까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최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