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도(재단법인 페이버스 회장)
날씨가 추워졌다. 바람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맘때면 남동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람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 여름과 겨울에 대륙과 해양의 온도차로 인해서 반년 주기로 풍향이 바뀐다는 계절풍의 영향이다. 북서풍이 시작되면서 이북의 정책 변화에도 새 바람이 불어올지 기대된다. 현 정부가 들어서고 8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북관계는 냉각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MB정부의 원칙적인 대북정책과 이에 대응하는 북의 전통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에 기반한 정권 길들이기 차원의 압박전술이 한몫을 했다고 여겨진다.

오는 18일이면 금강산 관광선 '금강호'가 첫 출항한지 10주년이 된다고 한다. 사업 초기에는 관광비용도 비싸고 활성화 되지 못했지만, 육로관광과 당일, 1박2일, 승용차 관광 프로그램이 추가되고 금강산호텔을 개관하는 등 편의시설이 확충되면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비로봉과 백두산 관광 시작을 눈앞에 두고 북측 초병에 의한 관광객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현재 남북 모두는 선(先)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충분히 협의 가능한 사안으로 보여진다. 핵심 쟁점은 우리 정부가 요구한 사고 조사단의 진상 파악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북측 입장에서는 사고자가 북한 여성으로 오인할만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검은색 원피스에 흰색 카디건) 군 경계수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다가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라 주장하면서 사고 조사단 수용을 주권 침해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는 MB정부의 대북 정책을 바꾸기 위해 남북의 접점에서 '고의' 또는 '방임'에 의한 긴장상태 조성 의도도 의심하고 있는듯하다. 어쨌든 10년 동안 쉬쉬하던 금강산 관광객의 어수룩한 신변안전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고 이에 대한 명쾌한 대책 없이 관광을 재개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북측 당국자들이 인정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라 여겨진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금강산 관광의 누적 관광객은 195만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개성공단 조성 및 개성관광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이 그동안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유지하여 상호간 불필요한 긴장완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사태의 장기화는 해당 기업 및 협력업체와 고성지역 영세업체들의 직접적인 피해 이외에도, 향후 남북 경협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얼마 전 필자와의 단독대담에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중·일 등 주변국의 대북 경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으로 북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촉구한 것은 현 사태 해결에 있어 참고할만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경인일보 10월6일자). 1조원 가까이 투자된 금강산사업은 사업권, 토지 이용권 등을 현행 북한 법률로 보장받고 있어 중·일 등 외국 자본에 북한의 자산이 헐값에 매각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와 더불어 대북 기업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보다 냉정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평가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최근에 집권당 대표가 특사파견을 대통령에게 건의한 적이 있는데 대북·대남 특사를 떠나서 총력적 외교력을 전개하여 진정성 있는 대화의 통로를 열어 남북경색을 풀고 실제적 협력관계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할 때라 여겨진다.

북의 위협이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국가위험 지수(country risk)를 높여 국가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 대한 우리정부의 태도에 대해 신석호 북한학 박사는 경영학의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의 태도를 들어 비교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위험 자체를 회피하는 것, 둘째는 관리하는 것, 셋째는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는 남북관계를 지속하며 북한이 주는 리스크를 파악하고 적절히 관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며, 적과 동족의 고루한 이념적 개념에서 벗어나 위협세력(risk)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며 관리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 바뀌는 계절이다. 이념적 대결구도에서 실제적 관점으로 전환하여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한 통일된 한국을 준비하는 인적, 문화·예술적 교류와 함께 단절된 반세기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