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연구소.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자리한 이 연구소는 쌀 소비 촉진과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 (사)한국쌀가공식품협회에서 8억원을 들여 설립한 떡볶이 전문 연구개발(R&D)센터다. 연구소 입구에 들어서기 전 100m 전방에서부터 '떡볶이연구소'라는 큼지막한 간판과 홍보문구는 곧 연구원들의 '거대한 출발과 각오'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중견기업 연구소 못지 않게 건물 내외부의 규모와 레이아웃도 수준급이다. 413㎡ 면적에 부속건물(공장)이 2동이나 딸려 있고 본 건물 역시 2개 층에 걸쳐 연구 전문공간이, 연구소 밖에는 고급 리조트에서나 봄직한 야외 카페도 마련돼 있다. 2층 연구실 냉장고에는 다양한 종류의 떡들이 한 가득 채워져 있고, 제조실험실 그릇에는 매운 맛의 강도에 따라 나뉜 고춧가루가 들어있다. 그제야 신기하고 흥미로웠던 '떡볶이연구소'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었다.

떡볶이는 귀한 음식이 아니다. 집이나 학교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나가도 살 수 있어 어린 시절 모두에게 참 만만한 간식이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 100원어치만 해도 배가 부르던 시절이 있었고, 요즘도 2천~3천원이면 적당히 배를 채울 수 있다. 흔하고 만만한 탓일까. 떡볶이는 과소평가받는 음식이기도 하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떡볶이는 떡볶이일 뿐 '품격있는 요리'로 대접받지 못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기는, 한국인의 전 생애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는 메뉴인데도 말이다. 30~4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국민 간식' 반열에 올랐지만 길거리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그런 떡볶이가 이제는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길거리 음식? 아니죠~"

떡볶이연구소는 지난 3월11일 (사)한국쌀가공식품협회 부설기관으로 출범했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떡볶이의 세계화야말로 쌀개방으로부터 국내 쌀농가를 보호하고 해외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막강한 음식'이라고 판단, 적극적인 프리젠테이션으로 정부로부터 5년간 140억원의 지원금을 확보해 출발선을 끊었다.

초창기엔 연구소 이름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생긴다. 김용수 소스개발팀장은 "떡볶이연구소에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 장난스런 웃음부터 보낸다. 떡볶이가 뭐 연구할 게 있느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떡볶이를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드는 연구를 한다고 설명하면 다들 그거 해볼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고 말했다.

연구소의 1차 목표는 우선 다양한 떡볶이 제품을 개발하고 소스의 다변화와 표준화, 매뉴얼화를 통해 떡볶이가 세계적 웰빙 식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떡볶이를 만들어 보는 수준이 아니다. 수분, 지방, 단백질, 염도, 산도, 색소 등에 대한 성분 분석은 물론 미생물 실험 등을 통해 과학적 방법으로 떡볶이를 연구·개발한다. 과제로 삼고 있는 연구내용 또한 단순히 떡볶이에만 국한되지 않은 관련 산업 전체에 닿아 있다. 떡볶이 원료가 되는 떡의 형태나 모양, 씹는 느낌을 다양화해 연령과 국적을 넘는 대중성을 확보하고, 각국 대표요리와 떡볶이 원료를 융합한 새로운 떡볶이 요리법도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유독 강한 향을 풍기는 떡볶이 냄새를 줄이기 위한 냄새저감·친환경 저에너지 조리기구, 수출용 포장지와 테이크 아웃 용기 등도 개발한다. 관련 중소기업에 대한 컨설팅과 기술지원에 적극 나서고 떡볶이 전문 프랜차이즈 모델 개발과 떡볶이 품질표준화 교육도 담당한다.


■"이탈리아 스파게티? 한국은 떡볶이!"

연구소는 떡볶이의 세계화에도 전력투구하고 있다. 우선 올해 미국·일본·중국·유럽 사람들 입맛부터 조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국가별 떡볶이 입맛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다. 김용수 팀장은 "떡의 찰기, 매운맛, 단맛, 크기 등 나라별로 선호가 다다르다"며 "각 나라에 맞는 떡볶이가 개발될 예정"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각 국가에 맞는 떡볶이가 개발되면 시범적으로 떡볶이 체인점을 낼 계획이다. 이른바 '안테나 숍'이다. 각 나라 입맛의 떡볶이를 현지에서 팔면서 반응을 감지할 계획으로, 내년에는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서양인의 입맛을 시험해볼 수 있는 러시아 연해주에 떡볶이 숍을 열 계획이다. 실제로, 떡볶이의 잠재력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방한 외국인 346명을 대상으로 '한국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나' 라는 설문조사에서 김치, 불고기, 비빔밥 등에 이어 6번째로 인지하고 있었고 외국인 3%가 떡볶이 요리를 맛본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열풍 등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 고조 및 우리 음식의 우수성에 대한 인지도가 확대되면서 웰빙 트렌드로 슬로푸드, 아시아계 에스닉푸드(Ethnic food·민족 고유 음식)를 선호하는 추세여서 우리 음식이 건강식과 연계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인의 눈길을 더욱 끌어모으는 일환으로 떡볶이 모양 역시 둥글고 길쭉한 모습에서 벗어나 다채롭게 개발된다.

■떡볶이 달인들

국내 최초, 세계 최초 연구소인 만큼 연구원 면면도 화려하다. 현재 연구소 인원은 총 5명으로, 식품영양학과와 식품공학을 전공한 박사 학위자도 3명 있다. 5년내 16명(박사급 5명, 보조 7명, 운영담당 4명)까지 연구인력을 늘릴 방침이다. 농학박사인 이상효(47) 소장은 수십년간 쌀 연구에만 몰두해 온 자타공인 '쌀 전문가'로, 중앙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후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식품연구원에서만 20년을 몸담았다. 연구원에 입사하자마자 당시 남아돌던 수입쌀 소진 방안에 골몰해 '쌀라면', '쌀국수', '쌀빵' 등 40여가지 쌀 가공식품을 만든 주인공이자 '햇반'이란 상표명으로 잘 알려진 무균포장밥을 1990년에 개발한 주역이다. 최근에는 '씻어나온 쌀'도 개발했다.

연구원들은 떡볶이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다. 길성희(24·여) 연구원은 하루 세끼 떡볶이를 먹으라고 해도 반색할 만큼 떡볶이 마니아다. 학창시절 친구들로부터 "제발 그만먹자"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 외국의 파스타나 프레즐처럼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햄버거하면 콜라를 떠올리듯 떡볶이에 어울릴 음료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김용수(48) 팀장은 소스 개발의 달인이다. 전 직장에서 글로벌 햄버거회사에 납품하는 불고기 소스를 개발해 소스 분야 일인자로 인정받은 실력파로 다양한 떡볶이소스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집에서 자녀들에게 떡볶이를 만들어주면서 냉철한 평가를 기록한다.

생명화학공학을 전공한 황재호(25)연구원은 떡볶이 세계화에 동참하고자 이 길을 택했다. 외국인 입맛에 맞는 부드러운 식감의 떡볶이떡을 개발하는 것이 주력 임무다. 이여람(23·여) 연구원은 서양요리를 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음식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아버지께서 떡볶이를 김치나 불고기처럼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라고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