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이준배기자] 문화가 힘이다!

한겨울 한파가 매섭다. 추운 날씨만큼이나 경기불황의 골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각종 지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민경제는 뚜렷하게 좋아지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일까. 나눔의 손길을 나타내는 사랑의 온도계 눈금도 지난해보다 늦게 올라가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만 전해진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어려운 때일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문화다. 반만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잠재력을 바로 그 문화에서 찾자는 움직임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며 문화의 힘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미 대한민국의 음악, 음식, 드라마는 우리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한류(韓流)'라는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아시아는 물론 더 나아가 전세계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문화의 힘은 단순히 그 하나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2008년 우리나라 문화콘텐츠 수출액은 2조 원이 넘는다. 이렇듯 문화는 이제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특히 문화콘텐츠는 정부가 정한 신성장 동력에 포함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렇듯 이제 문화는 더 이상 피상적인 저 너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젠 산업으로 떼려야뗄수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무한한 문화의 힘이 과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본다.

문화가 힘이다 / 해외

국가 성장수준 판단 총체적 척도는 '문화의 힘'
■문화의 힘

한 나라의 힘을 보는 기준은 무엇일까. 일단 국력 면에서 규모와 경제력을 제일 먼저 보게 된다. 일단 국방력과 경제력에서 앞서는 미국은 많이 쇄약해졌다고는 해도 최강대국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인구도 중요하다. 13억의 중국과 12억의 인도가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했음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인구와 경제력으로만 나라를 보는 건 아니다. 한 나라의 수준을 판단하는 총체적인 척도인 문화도 하나의 중요한 잣대로 여겨진다.

프랑스를 보라.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 버금갈 만큼 세계를 주름잡은 강대국이었으나 지금은 국토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프랑스는 예술의 도시 파리를 비롯 칸 영화제, 코르동 블루 등 영화와 패션, 요리 등 문화를 통해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전세계에 행사하고 있다.

특히 이런 문화의 힘은 단순히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세대를 거치는 동안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21세기에 들어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도 이미 60여년전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미키마우스·비틀즈 등 전세계 영화·음악시장 좌우
▲미국과 영국, 문화가 산업을 견인하다

미국은 20세기 초인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어두운 시기가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이란 강력한 건설부양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정책이 건설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절망의 나락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미국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경제 회생의 믿음을 심어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워주기 위한 강력한 '예술진흥사업'을 실시했다. 당시 수천 명의 음악인, 작가와 미술가 등 예술가들은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문화정책이 뒷받침되었기에 미국 국민들은 '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결국 공황을 탈출하고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에 올라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게 된다.

또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월트디즈니의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디즈니 하면 디즈니랜드와 함께 떠오르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지금까지 전세계 아이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렇듯 활발한 캐릭터 산업의 모태를 시작으로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태동하게 되었고 이제 전세계 영화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영국은 20세기 중반까지 롤스로이스 등 자동차를 수출하는 등 산업국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면서 대표적인 항구도시 리버풀은 아주 가난한 도시로 전락했다.

이러한때 태동한 것이 바로 '팝의 전설' 비틀즈다. 비틀즈의 노래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현재 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은 비틀즈 축제를 매년 여는 등 관광산업으로 도시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 하면 이제 뮤지컬을 떠올리게 된다. 영국은 런던 웨스트엔드를 중심으로 뮤지컬산업을 크게 발전시켜 영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뮤지컬 한 편쯤 안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또한 전세계 아이들의 필독서가 돼버린 '해리포터'시리즈는 영화로도 매년 나오며 어른들마저 열광시키고 있다.

日 저패니메이션·요리·소설… 국가 발전동력 우뚝
▲가까운 일본, 문화가 곧 돈이다.

일본도 애니메이션, 소설, 요리 등 다방면의 문화산업을 발전시켜 자국 발전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전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소설도 그렇다. 최근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0)의 '1Q84'는 14주 연속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질주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9월 출간 이후 3개월 만에 무려 70만 부 가까이 팔려나가며 '하루키 열풍'을 불러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 일본은 요리마저 프랑스를 제칠 기세다. 세계적 권위의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 가이드'는 지난달 도쿄가 프랑스 파리를 제치고 맛있는 식당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손을 들어줬다.

'미슐랭 가이드'는 도쿄편 2010년판에서 식당 11곳에 최고 등급인 별 셋을 줬다. 2009년판의 9곳에서 2곳 늘어난 것으로 이에 따라 도쿄는 3성급 레스토랑 10곳을 보유한 파리를 앞질러 세계 최고의 미식 도시란 명성을 얻게 됐다.

문화가 힘이다 / 국내

■ 한류(韓流)의 힘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의 해외 진출로 대표됐던 한류의 물줄기도 이제 더욱더 폭이 넓어지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2002)와 '대장금'(2003)을 거치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한류는 '욘사마' 등 수많은 한류 스타를 만들어냈으며, 세계인들의 눈과 발걸음을 한국으로 향하게 했다. 그룹 동방신기는 아시아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올라섰고, 그외 많은 가수와 그룹들이 범아시아권을 활동 무대로 삼아 종횡무진하게 됐다. 이로 인해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일었고, 한식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졌다. 특히 2009년은 한류 재도약의 계기가 되는 한 해였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할리우드의 중심부에 가수 비와 이병헌이 당당히 입성했고,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 등의 드라마들이 잇따라 큰 인기를 끌면서 한류 붐이 다시 거세게 일었다. 여성그룹 원더걸스가 미국 빌보드 메인차트 100위권에 국내 가수로는 처음 진입했고, 그룹 동방신기와 SS501 등의 해외 공연은 변함없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막걸리가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아시아를 넘어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더욱 뜨거워지는 등 한류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된 한해였다.

드라마 히트이어 가수 비·이병헌 할리우드 진출
▲한류,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이제 한류는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며 지역적으로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뉴욕 한복판인 타임스퀘어에는 가수 겸 배우 비(27)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을 홍보하는 대형 전광판이 걸렸다. 그동안 삼성, LG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전광판을 통해 타임스퀘어에서 광고한 적은 있지만, 한국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로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례적인 일.

2008년 '스피드 레이서'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비는 '닌자 어쌔신'으로 한국인 배우 최초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또 지난해 7월에는 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의 광고판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심가에 등장했다. 이 블록버스터 영화의 여러 인물 중 이병헌이 맡은 스톰 쉐도우의 모습이 실린 광고판이 설치됐다. 이병헌은 올해 '지. 아이. 조' 2편에 출연할 예정이다. 이 두 배우의 할리우드 입성으로 더이상 한류는 아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란 것이 확인됐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전하면서 가요계의 세계 진출도 줄을 이었다. 비와 동방신기를 비롯해 SS501, 보아, 쥬얼리, 슈퍼주니어 등의 그룹이 해외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특히 그룹 원더걸스는 올해 미국 시장에 진출해 동양가수로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노바디(Nobody)'를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핫 100'(76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거뒀다. 원더걸스는 미국에서 입지를 조금 더 다진 후 유럽 진출을 노리고 있다.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 송승헌, 권상우, 원빈, 소지섭 등 30대가 이끌던 한류는 신선한 신예들의 가세로 생명력을 한층 연장하게 됐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히트로 스물두살의 신예 이민호가 일약 대어가 됐으며, 김현중과 이준기, 현빈, 송혜교 등이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해외 판매, 광고 판매, OST 수익, 부가 수익 등으로 약 100억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MBC 사극 '선덕여왕'의 경우 1회부터 광고 완판(완전 판매)을 기록하며 국내에서만 6개월간 328억여원의 광고 수입을 올렸다. '선덕여왕'은 일찌감치 일본, 대만에 이어 세계 10개국에 판매를 확정했고 국내 종영 전에 이미 일본, 대만은 현지 안방극장에 소개됐다. 게다가 뮤지컬로 제작돼 2010년 새로운 열풍을 예고하고 있다.

콘텐츠 수출도 꾸준히 상승세를 띠고 있는데,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 콘텐츠 수출은 전년보다 25.6% 증가한 30억 달러에 달하고 관광 분야는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보다 100만 명가량 늘어난 79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올해 콘텐츠 수출 목표는 작년보다 20% 이상 증가한 38억 달러로 제시한 바 있다.

한때 유행아닌 상호문화교류 글로벌파워 키워야
▲한류의 미래, 문화 교류

최근 국내에선 막걸리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는 오히려 한류가 역수입된 독특한 케이스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류가 단순히 일방적인 바람이 아니라 각국과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로 발돋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민의 술' 막걸리는 한류 바람을 타고 일본 매출액 1위 백화점에 입성하는 등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9월 수출된 막걸리의 86.8%(3천804t)가 일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들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방문시 막걸리를 찾게 되면서 국내에서도 자연스레 소비량이 늘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막걸리는 그동안 와인에게 내줬던 자리를 다시 한번 꿰차면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이러한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친근감 있게 한류를 전파하려는 태도와 탄탄한 콘텐츠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한류라는 용어 자체도 너무 일방적이다. 이제는 한류가 흐름이 아닌 교류로 확대 재생산되어야 지속될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에 '한류'를 퍼뜨린 원조격인 배용준은 지난해 9월 일본에서 열린 자신의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출판기념회에서 "'한류'라는 표현이 너무 일방적인 것 같다. 그 대신 문화교류라든지 다른 표현을 썼으면 좋겠다"며 '한류'가 좀 더 포용력 있게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이는 우리의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을 타고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것에만 만족하고 말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서구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토착화해서 강대국을 만들어왔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도 외부와의 다양한 문화교류를 통해 꽃피울 수 있었다. 우리도 이제는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상호 발전의 틀 안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글로벌 파워를 키워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