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정식 (사회부장)
[경인일보=]흔히 똥을 먹여 키우는 것으로 전해진 제주 재래 흑돼지를 똥돼지로 부른다.

이 똥돼지를 제주도 외에도 과거 전남 진도·완도·신안·곡성, 경남 충무·거창·함양, 함북 회령, 강원도 양구 등 연안지역과 산간지역에서도 키운 사실을 보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똥돼지가 섬이나 산간지역에서 주로 사육된 데는 음식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식이 귀해 잔반이 생기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똥돼지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특별한 먹을거리를 줄 수 없어 똥을 줘 키운 것인데 한정된 인분의 양으로 한 집에 두 마리 이상은 키우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똥돼지를 키우는 목적은 질 좋은 퇴비를 만들기 위한 것도 있었다. 사람의 똥을 받아 먹기 위해 돼지는 돼지우리를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신이 눈 똥과 주인이 넣어 준 짚을 발로 뭉개는데 이 짚이 나중에는 질 좋은 퇴비가 되기 때문이다. 순전히 인간사회기여도(?)로 따지자면 꽤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 이 똥돼지가 네티즌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무지막지한 욕을 먹고 있다고 한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딸 특채 파문이 불거진 이후 한 대기업에서 낙하산으로 입사한 고위층 자제를 일컫는 말로 몰래 사용하던 '똥돼지'가 우리 사회에 커밍아웃했기 때문이란다. 똥돼지에 비유된 고위 권력층 자제들이 심한 비유라며 억울해 할 일인지, 아니면 '똥먹는 것도 서러운데 어디에다 비유하냐'며 난리 칠 똥돼지가 억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위 권력층의 이런 똥돼지들로 청년 실업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분노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제주 똥돼지가 더 나은 처지인 듯싶다.

행정안전부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자유무역협정 통상전문계약직에 특채된 유 전 장관의 딸은 외부 심사위원 3명이 평가한 종합평가에서는 최종 면접대상자 3명 중 2등이었지만 외교부 내부 심사위원 2명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줘 결국 1등으로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채를 위해 원서 마감날짜를 늦추고, 장관 딸의 응시사실을 알고 있는 외교부 직원이 면접에 참여, 만점에 근접한 점수를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88만원 세대와 청년 실업자들은 그동안 가슴 한쪽에 담아뒀던 공분을 토해냈다. 상대적 박탈감이 컸던 만큼 똥돼지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은 뻔한 이치다.

권력층 자제의 특채파문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당시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은 아들을 인사청탁을 통해 인천시 경제자유구역청 5급 공무원으로 채용하게 했다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일로 아들도 사표를 냈고 인천시는 차점자로 떨어진 응시자로부터 소송을 당해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누리꾼들이 말하는 똥돼지는 비단 중앙정부와 정치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채문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시장 군수의 친인척이 특채되거나 시의원과 고위 간부의 자녀들이 은밀히 공직에 채용되고 있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실제로 경기도내 기초자치단체의 시설관리공단과 각종 재단 등에 포진해 있는 시장과 시의원, 시 고위 간부들의 자녀와 친인척들은 알려진 수만 40여명이 넘고 있다. 파악하기에 따라서 그 숫자는 더 많아질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의 특채 과정에서 부당한 청탁이나 외압이 있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취업문을 뚫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고 청년 실업률이 10년 만에 최고치인 10%까지 치솟았다는 통계수치 속에서, 죽어라 공부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이들 고위층의 특별한 채용은 결코 곱게 보일 수 없다.

실업자 100만명을 넘어선 지금, 더 이상 토종 똥돼지를 욕되게하지 않는 길은 대통령도 천명했듯 공정한 게임의 룰이 통하는 사회를 조성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