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오동환 객원논설위원]devil, demon, fiend, evildoer, Satan 등 영어엔 악마를 뜻하는 단어도 많지만 최근 일본에선 이른바 '돌아다니는 악마(도오리마:通り魔)'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도오리마'란 '바람처럼 지나치며 사람을 해치는 악마'라는 뜻으로 주로 오토바이를 탄 채 쏜살처럼 지나가며 주로 젊은 남성들을 찔러 죽인다는 것이다. 2003년 7월 24일 도쿄 시부야(澁谷)구 번화가에선 길을 걷던 남성이 5명이나 연달아 변을 당했다. 그 해 같은 달 모스크바에선 또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케 하듯이 11명의 여성이 밤중과 새벽에 강간 살해를 당했다. 도쿄 악마는 남성을, 모스크바 악귀는 여성을 노렸고 후자의 경우 돌아다니는 악마가 아니라 잠복하는 악마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소녀를 강간 살해, 시신 일부를 조리까지 한 범인 2명에게 지난 5월 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법정이 각각 금고 19년과 18년만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강도 강간으로 14년6개월이나 복역, 출소 4달 만에 살인까지 한 서울 신정동 옥탑 방 악마 윤모(33)의 경우는 인간 악마들의 살인 범죄사상 가장 특이하고도 기괴(奇怪)한 원인 유형으로 기록될 것이다. 자신은 불행한데 남들(40대 부부)은 행복해 보이는 게 참을 수 없어 살해했다는 살인 동기야말로 전 세계 사법 당국자들이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동기 없는 '묻지마 살인' 유형인가 아니면 행복해 보이는 것도, 행복 표현까지도 불행한 사람에겐 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동기 있는 살인'에 속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옥탑 방은 가난의 표상이다. 그렇다면 이번 살인마의 보다 적확(的確)한 살인 동기는 '행복해 보인 것'도 아닌 잠시 밖으로 잘못 흘러나간 웃음소리였을 것이다.
흉악범과 같은 악마를 중국인들은 '이리의 마음과 개의 폐(狼心狗肺)를 가졌다'고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야누스의 앞뒤 두 얼굴이 아닌 '낭심구폐'로 뱃속에 잠재한 또 하나의 얼굴을 갖는다고 한다. 그 얼굴이 영화 속의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로 돌출하지 않는 건 평생에 걸친 양심과 진심 단련 덕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