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정식 (사회부장)
37년간 북한을 철권 통치한 김정일이 지난 17일 전용열차안에서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올해 5월 서방세계를 떨게 한 빈라덴이 사살되고 10월에는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한 카다피 대통령이 하수구에서 사살되는등 테러와 독재로 악명 높았던 통치자들이 공교롭게도 올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역술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에게 올 한해는 최악의 해였던게 분명하다.

어찌됐건, 이제 한반도는 김정일 사망이라는 큰 변수에 부딪혀 앞으로의 전망을 점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을 맞았다. 그의 사망이 한반도에 통일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줄지 아니면 일촉즉발의 남북관계를 조성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변화는 앞으로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서 국내 전문가들은 김정일 사후, 20대에 불과한 김정은으로의 정권이양이 쉽지 않을 것이며 북한 내부의 심각한 권력투쟁이 발생해 급격한 내부변혁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해 왔다. 1974년 후계자 지명후 20여년간 2인자로 지내며 권력다툼과정을 거쳐 기반을 다져온 김정일과 달리 후계지정 3년만에 권력의 핵심에 올라선 김정은이 과연 권력을 손에 쥘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분석의 골자다.

실제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북한 정권은 그의 어린 아들 김정은에게로 넘어가게 됐지만 김정은이 자신의 체제를 완전히 구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난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NYT는 김정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라며 지금은 북한의 막강한 군부와 일부 지배 특권층이 김정일 가족의 3대 세습을 용인하고 함께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도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 전체위원회에 출석,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후계체제' 유지 여부에 대해 "예측할 수 없으며 예의주시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으로의 불안정한 권력승계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예상외로 빠른 속도로 자리잡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20일 오전 김정은 부위원장의 영도를 강조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정은의 이름 앞에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이는 지난 1998년 '김정일 시대'를 개막하며 김 위원장의 이름 앞에 '경애하는'이라는 존칭을 붙였던 점을 감안하면 김정은 부위원장에게 '존경하는'이라는 존칭을 붙여 '김정은 시대'를 공식화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 체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태도는 향후 김정은 체제 안착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북한의 후견인임을 인정받고 있는 중국이 최근 김정은 체제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매체들이 김 위원장 사망사실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김정은을 '위대한 계승자'라고 소개하거나 김정은 지도체제를 인정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초 3대세습을 달갑지 않게 보던 중국이 예상치 못한 김정일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조속한 북한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김정은체제의 유지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결국 한반도의 통일은 중국이 바라는 바가 아니며 북한의 체제 안정과 현상유지만이 그들의 목적인 셈이다. 아편전쟁과 중일전쟁 등 근대사에서 늘 패자였던 중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을 3.8선 이남으로 밀어낸 한국전쟁은 승리한 전쟁이었고 북한은 그들의 역사적 승전지인 만큼 포기할 수 없다는 의도일 것이다. 이 때문에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포격, 테러지원 등 무수한 악행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져도 중국은 북한을 감싸왔고 이번에도 승전지의 안정을 위해 전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3대세습을 용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과연 이런 속내를 가진 중국 코앞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