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승헌 /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이번에는 예외였다. "너희들이 말했지. 맛있는 것 많이 먹을 수 있으니 맨날 제사였으면 좋겠다고." 제사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 수십 년을 들어 귀에 인이 박히고 박히었는데 올 제사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합동제사를 모시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일 년에 두 번씩 제사를 모시고 있다. 선친 기일이 정월 초하루인 관계로 이번 명절에도 큰 형님 댁에서 차례와 제사를 지내고 왔다. 당신께서 하는 말은 40년 이상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지만, 언제부터인가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어린 시절, 돼지고기는 명절이나 제삿날에야 맛볼 수 있었다. 쇠고기는 일 년에 단 한번, 마을 산신제가 끝나고 신문지에 쌓여 오는 몇 조각이 다였다. 196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가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었으니 굳이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으리. 그런 우리 가족이 고기에 물렸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김치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느끼한 고기 맛을 누그러뜨리려고 칼칼한 김치를 제사 저녁상에 따라 올리고 젓가락질이 잦아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요새 유럽하면 전 세계 경제를 흔들어버릴 잠재적 폭탄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어쩌면 먹거리문화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올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비만세다. 비만을 유발하는 영양소나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여 건강에 해로운 식품 섭취를 줄이려는 것이 비만세의 목적이다. 덴마크는 작년 10월 버터와 우유, 피자 같은 포화지방산 식품에 대해 비만세를 도입했다. 프랑스도 올해부터 청량음료에 비만세를 매기는데, 연간 1천800억 원의 세금이 걷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헝가리도 작년에 소금, 설탕, 지방의 함량이 높은 가공식품에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영국정부도 비만세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카메론 총리의 발언이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뉴욕주 같은 주정부를 중심으로 청량음료에 초점을 맞추는 비만세 논의가 추진되고 있다. 이번 달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청량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면 미국에서 연간 2만6천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비만은 '새로운 흡연'으로 불릴 정도로 건강에 치명적인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비만세 도입에 부정적이다. 부유세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 나타난 이상적인 발상이라는 반응보다 강도가 더 크지 싶다. 하지만 비만 실상을 보면 비만세가 도입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듯하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남성의 비만율은 36.3%로 사상 최고치이다. 1998년의 25.1%보다 크게 늘어났다. 특히 30~40대 남성은 비만율이 40%대를 넘고 있다. 남자 소아와 청소년(2~18세)의 비만율은 1998년 10.2%에서 2009년에는 14.2%로 껑충 뛰어올랐다.

비만이 본격적인 사회정치 이슈로 떠오르는 계기는 돈 문제가 될 듯하다. 비만과 관련된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08년 비만에 따른 질병비용은 1조8천억 원에 이른다. 당뇨병 6천억 원을 필두로 고혈압, 뇌졸중, 허혈성심장질환 순서이다. 비만율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 비만세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공적건강보험의 재정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비만세는 선진국 세금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먹을거리에 세금을 매기는 건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덧붙이는 역진적인 조세정책이다. 소득과 비만율은 반비례하는데 비만세의 대상이 되는 식품의 최대 소비자는 저소득층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식습관을 쉽사리 바꿀 것인가도 복병이 될 수 있다.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하면 건강에 더 나쁜 소금이 든 음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국사회도 점점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삶의 질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리 없다. 산다는 게 고역일 게다. 두 아들과 조카들은 그날 제수 저녁을 같이 하지 않았다. 피자로 배를 채웠다고 했다. 어머니가 올해는 예의 그 '맨날 제사' 타령을 빠뜨린 건 약주를 과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40㎏도 안 되어 비만 걱정은 없지만 살아생전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건강과 행복은 실천하는 자에게 다가온다. 새겨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