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작품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재판은 '베니스의 상인'중 '샤일록의 재판'일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유대인 상인은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내되 피 한방울이라도 흘리게 하면 사형에 처하겠다는 재판장 포셔의 명판결에 결국 손을 들고 만다. 미국 미주리주의 페크 판사는 한 지방법원에서 14년동안 재직했다. 그는 재판석에 앉을 땐 늘 흰 헝겁으로 눈을 가렸다. 자기 앞에 서는 소송 당사자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공평하게 재판을 하기 위해서다. 한 지방에 오래 있다보니 대부분 얼굴이 익숙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제출된 서류는 모두 서기가 낭독했다. 피고의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이 공정한 재판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180년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법과 정의의 수호신인 테미스 여신은 눈을 가리고 오른 손에 천칭을 들고 있다. 천칭은 공정성을 의미한다. 눈을 가린 건 심판을 함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좌우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신들의 사회에서 법과 정의를 지키는 테미스의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보듯이 사회 질서는 법과 정의에 의해서, 법과 정의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공정성에 의해서 구현된다. 판사가 법정에서 입는 법복의 색깔이 검정색인 이유는 어떤 색깔에도 쉽게 침범당하지 않고 오염되지 않는다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말하자면 '공정함'과 '권위' 그리고 '책임'의 엄격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판사들이 막말을 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여론의 지탄을 받은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재판 과정에 오간 말을 녹음파일로 보관하는가 하면, 어느 법원은 동료 법관에 의한 '불시 법정방청 모니터링'을 시행 중이다. 미스터리 쇼퍼(Mistery Shopper·손님을 가장해 문제점을 모니터링하는 요원)'처럼 예고 없이 동료 판사가 법정에 들어서는 방식이다. 재판의 독립성·자율성을 중시하는 법원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일부 불량 판사들이 여전히 피고인에게 막말을 일삼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며칠전 판사가 방청객에게 피고인을 옹호하는 발언 기회를 줬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판사의 남편은 국회의원이고, 피고인의 부인은 의원의 보좌관이었다. 사법부는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 이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