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구전략을 논한다고 하지만
여야의 셈법은 아주 달라
당리당략 계산속 회의록 공개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성찰이
끼어들 틈은 애당초 없었다
지난 해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문제제기 이후, NLL 논란의 촉발 주체는 새누리당이지만, 민주당도 수저를 슬그머니 얹었다. NLL을 둘러 싼 백해무익한 논쟁 아닌 정쟁이, 여야 자신들이 보기에도 민망했는지 양측이 모두 이른바 출구전략을 얘기한다. 새삼스레 어느 정파의 책임론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사태를 보는 시야를 흐리게 하고,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양비론(兩非論)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LL을 둘러싼 정쟁은 양비론의 전형이다. 정치권이 출구전략을 논한다고 하지만 여야의 셈법은 판이하다. 국정원에 보관중인 대화록의 녹음 파일은 공개하지만, 회의록 부속자료 열람은 반대한다는 새누리당이나, 정 반대의 주장을 펴는 민주당은 여전히 출구전략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여야의 당리당략의 계산속에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성찰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애당초 없었다.
대체적인 이념 공방에서 비교적 새누리당이 유리한 구도를 형성해 왔던 과거와는 달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작년 10월 정문헌 의원이 NLL을 정치의 한 복판으로 끌고 들어온 이후 초지일관 전직 대통령의 대북 인식을 문제삼는다. 일견 보수독점적 카르텔 정당구조에서도, 보수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함으로써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의 결집을 도모하고 다가오는 각종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지극히 정치적, 당리당략적 사고의 소산인줄 알았다.
그러나 NLL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여권의 주류는 뼛속 깊숙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북한에 갖다 바치려고 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성사될 것 같지 않지만 여야가 NLL 수호에 대한 공동선언을 함으로써 논란을 종식시키자고도 한다. 뜬금없다. 언제 민주당 등 야당이 NLL을 수호하지 말자고 했던가. 기회있을 때마다 NLL을 사수해야 한다고 야당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지난 대선 며칠 전, 권영세 주중 대사의 NLL 관련 언급이나, 12월 14일 김무성 의원의 부산 유세에서의 NLL 관련 내용 등은, 이와 관련한 여야의 정치적 쟁투와 상관없이 여권이 NLL을 자신들의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추론과 논리적 인과관계의 형성에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여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NLL 관련 발언을 어떻게든 '영토의 포기'라는 논리적 정합성이 전무한 논리로 끌고 가려했다. 또한 남재준 국정원장의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 공개, 이어 회의록 전문의 공개라는 국정원장의 직무를 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행위는, 지난 대선에서의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대선 개입 의혹을 덮으려는 계획된 도발이라는 정황과 심증을 갖기에 충분하다.
민주당은 애초의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불가의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고, 갑자기 공개 입장으로 선회했다. 어차피 회의록 전문이 공개됐으니, 이것이 조작된 것임을 밝혀내자는 취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문재인 의원과 친노 그룹 등 당내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듯한 흔적은 지울 수가 없다. 진정성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순히 친노그룹이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순진할 정도다. 따라서 야당도 국익과 민생을 담보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급기야 민주당 내 친노와 비노의 해묵은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 은근슬쩍 고개를 내미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익을 위해 끝까지 정상회담 회의록 열람 및 공개의 부당함을 설파했어야 했다. 그리고 국정원 국정조사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야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령 NLL을 포기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는 한이 있어도,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는 국익과 민생을 위해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반대한다'라고. 그리고 새누리당의 NLL 대화록 공개의 부당성을 알렸어야 했다. 그러나 새누리와 민주는 적대적 공존을 택했고, 독점적 카르텔 정당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권력을 사유화 하지 않고 이러한 국민 우롱 행위가 가능할까. NLL 출구전략은 그래서 국민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