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던 네마키(자리옷)를 전당국(典當局)으로 들고 가서 돈 오십 전을 받아들었다. 깔죽깔죽하고 묵직하며 더구나 만든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은화 한 개를 손에다 쥐일 때 얼굴에 왕거미줄같이 거북하고 끈끈하게 엉켰던 우울이 갑자기 벗어지는 듯하였다'.
나도향이 1920년대에 쓴 현대소설 '여이발사' 중의 한 대목이다. 급전을 만들기 위해 잠옷까지 전당포에 맡겨야 하는 절박함이 그대로 드러난 글이다.
이런 '전당포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은행권의 문턱이 낮아지고 심야시간에도 영업하는 은행의 무인점포가 늘어나면서 그 수가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전당포 영업은 여전하다.
지난달 29일 오후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전당포라는 '동인사'를 찾았다. 동인천역 앞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 듯싶다.
뜻밖에도 여주인이 나왔다. 허승희(47)씨. 동인사를 인수한 것은 2년 전이지만 전당포 일을 한 지는 30년이 넘었단다. 이야기 도중 손님이 찾아왔다. 40대 남자가 금반지 석돈을 맡기고 11만원을 융통해 갔다. 1개월 이자는 3천300원.
곧이어 들어온 20대 남자는 얼마전에 4만원을 받고 맡겼던 2돈짜리 14K 금반지를 찾아갔다.
요즘 저당물의 90% 정도는 금이란다. 나머지는 고급 손목시계나 카메라가 차지한다.
허씨가 처음 전당포를 시작할 때인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전당포 영업이 거리제한을 둘 정도로 제법 성행했다고 한다. 손님들이 들고 오는 물건도 가지가지였다. 재봉틀에서부터 냉장고, 가죽잠바, 이불 등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능했다.
간혹 옛날 물건을 소품으로 쓰기 위해 방송국 등지에서 요즘도 가끔씩 찾아오기도 한다.
당시 최고급 손목시계로 치던 '라도시계'가 1만원이었다. 지금은 롤렉스시계 신형의 경우 150만원을 쳐준다니 세월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허씨는 “전당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살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형편도 아니어서 이들이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은 전당포가 제격이었다”면서 “법정 이자 이상을 받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고 말했다.
전당포 인기가 수그러든 것은 신용카드가 생기면서부터다. 신용카드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전당포에 갈 일이 없어진 셈이다.
밤을 새워 문을 열던 전당포들이 요즘엔 대부분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밤에도 얼마든지 은행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전당포 주인이 경찰서에 들락거릴 일이 거의 없지만 예전엔 다반사였다.
훔친 물건이나 도난품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대부분 전당포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허씨는 “경찰서에 가면 괜히 죄인 취급을 받아 전당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근래들어선 이런 문제로 경찰서에 간 일이 없다고 한다.
가치가 없어 잡을 수 없는 물건을 가지고 와 통사정을 하는 일도 많았는 데 이 또한 옛날 이야기가 됐다.
예전과 비교해 눈에 띄는 것은 '가짜'가 늘었다는 점이다. 진짜와 구별이 안될 정도다. 이 때문에 옛날 전당포 주인들은 물건만 보고 돈을 건넸는데 요즘엔 물건과 사람을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30년이 넘게 일을 한 허씨도 얼마전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한 여자가 롤렉스시계를 들고 와 170만원을 내줬는데 가짜였다. 전문가도 얼핏봐서는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전당포의 변화 모습은 이렇게 시대상의 변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 전당포 과거와 미래
지금과 같은 전당포는 일제시기에 들어왔다. '근대식' 은행이 도시마다 설립됐고 지방에는 금융조합 등 일반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기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소작에 의존하던 대다수 조선인 농민들이 그러한 금융기관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금융기관들이 일반 조선인들에 대한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리가 만무했다.
따라서 물건을 잡고 돈을 빌려주는 다양한 형식의 사설 금융기구들이 생겨났다. 농촌지역에서는 5일장을 무대로 해 장이 열리는 5일을 단위로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들이 성행하기도 했으며 도시지역에서는 전당포가 활발하게 영업했다.
전당포에서는 구두 한 켤레, 외투 한 벌 등 생활에 쓸모가 있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다 받아주었기 때문에 신용도 없고 형편도 어려운 사람들로서는 궁여지책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형식의 전당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 지역을 시작으로 전당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상품 유통용 인터넷쇼핑몰까지 갖춘 폰뱅크(Pawn Bank) 스타일의 전당포가 문을 연 것.
또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다양한 저당정보를 제공하고 온라인 상담까지 실시하는 전당포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같은 변화추세는 전당포를 체인점 형식으로 운영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는 미국, 유럽 등지의 모델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으
['전당포' 변천사] 서민과 울고 웃고… 문턱없는 사금융
입력 2002-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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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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