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만 해도 다 된 줄 알았다. 2011년 1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이용훈 대법원장은 12명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이라면서 죽산 조봉암(1899~1959)의 재심 사건(일명 진보당 사건) 주요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가 놓은 덫이었던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무죄라는 거였다. 당시 대법원장이 덧붙인 한마디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이제 늦게나마 재심 판결로써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 대법원장이 이렇게 사법살인을 인정하고 머리를 숙인 죽산은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나 젊은
거울은 내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게도 하지만 나의 내면까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게도 하는 독특한 물건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에게도 거울은 무척 각별한 생활 도구이자 영험함이 깃든 섬김의 대상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 인천 강화에서 고려시대 거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청동거울이 세트로 발굴되었다. 2013~2017년, 강화도 교동대교에서 강화대교를 잇는 인화~강화 도로 구간 문화유적 발굴 조사가 있었는데 이때 용정리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부근에서 그동안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고려시대 거울이 출토됐다. 재질은 청동이었고
인천상공회의소(인천상의)가 올해로 창립 140주년을 맞았다. 인천상의는 1885년 결성된 인천객주회를 효시로 한다. 1884년 만들어진 한성상업회의소를 기원으로 하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이어 그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인천상의는 이를 기념해 그동안의 이력뿐만 아니라 최신 인천 경제계 동향까지 담아낸 ‘인천상공회의소사’를 펴냈다. 1883년의 제물포 개항은 수도 서울의 문을 여는 것이었으니 그때부터 시작된 인천경제사는 우리나라 전체 경제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인천상공회의소사’는 ‘140년 인천경제사’라고 할
강화군이 지원하는 중고교생 해외 연수단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3주 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21일 강화군에 따르면 ‘2025년 청소년 해외 문화 체험 연수단’ 60명이 지난 20일 싱가포르로 출국해 2주간 ‘래플스 아메리칸 국제학교(Raffles American School)’에서 영어 캠프에 참가한다. 또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문화 탐방도 연수 기간에 이뤄진다. 강화군은 연수 비용의 90%를 지원하고, 저소득 가구 학생은 전액을 지원받아 비용 부담 없이 연수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다. 고려가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긴 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급하게 추진한 일이 개성에 있던 사찰을 강화도에 다시 세우는 거였다. 절을 짓는 일이 왕이 머무는 궁궐 공사와 맞먹는 중요한 국가적 사업이었다. 2010년,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강화여고 기숙사 증축 부지에서 고려 무신정권 시기 불상 조각의 흐름과 강도(江都) 시기 불교 미술의 특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발굴돼 관련 학계를 놀라게 했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아주 작은 ‘금동삼존불상(金銅三尊佛像)’. 크기는 높이 7㎝, 폭 6.5㎝ 정도였으며
10년쯤 전에 경인일보 1면에 ‘인천의 시(詩), 인천을 짓다’라는 코너를 맡아 진행한 적이 있다. ‘인천의 시’를 선정해 그 시를 소개하고, 풀이하는 글을 짤막하게 덧붙이는 형식이었다. 그때 몇 줄 안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인천의 시’가 말하는 장소를 찾아가곤 했다. 시의 현장에서 시인의 언어를 직접 느끼기 위함이었는데 당시 가 본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데가 인천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입구 ‘수원집’이다. 밴댕이 안주가 전부인 선술집이었다. 이가림의 ‘밴댕이를 먹으며’를 따라서 간 인천역 건너편 수원집. 주인장 부부는 새벽
인천 강화에서는 최근까지도 국보급 고려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고려 도성의 중심이었던 강화군 읍내에서는 유물 발굴로 인해 원하는 공사를 제때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하 터파기 공사를 꺼릴 정도다. 유물 발굴로만 따지면, 강화는 ‘현재 진행형’ 고려 수도이다. 최근 발굴된 고려 유물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강화역사박물관 전시장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垸)’. 강화역사박물관 ‘고려시대 강화’ 코너에 가면 볼 수 있다. 청동은입사향완은 다른 유물과 달리 사방에서
인천 강화도 하점면 하점산업단지 주변 하천인 목숙천에서 붕어와 잉어, 메기 등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7일 오후 찾은 강화 하점면 목숙천은 물 색깔이 검게 변해 있었고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었으며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배를 내놓고 죽어 있었다. 물고기 떼죽음 현장은 하점면에서 송해면 쪽으로 흘러가는 목숙천 중 강화역사박물관 주변 1km 정도 구간이다. 목숙천의 수질 오염과 물고기 떼죽음 현상은 지난 며칠 전부터 계속돼 왔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강화군은 몇 차례 시료를 채취해 인천시보건환경연구원에 수질검사를 의뢰했다
인천 강화도는 우리 역사 속 수도(首都)가 있었던 곳 중에서 국립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국가적 이미지 차원에서라도 강화에는 꼭 국립박물관이 설립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 나왔다. 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 필요성 토론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강화도는 잠시 머물다 간 임시수도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는데, 그 강화는 개성을 그대로 본떠서 옮겨온 고려의 40년 수도였다”면서 “강화라는 땅이 우리의 역사에서 감당한 일을 보면 지금까지 강화에
몽골 침입 이듬해(1232년) 고려 정부는 전격적으로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겼다. 강화로의 수도 이전은 당시 실권자였던 최우(?~1249)가 주도했다.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고려사절요’는 ‘경도(京都, 개성)에는 호수(戶數)가 10만에 이르고, 단청한 좋은 집들이 즐비하였으며, 인정이 향토를 편안히 여겨 옮기기를 어렵게 여겼다’라고 강화 천도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음을 분명히 밝혔다. 반대하다가 목이 날아간 대신이 여럿이었다. 최씨 무인 세력의 위세에 눌려 임금조차 어쩌지를 못했다. 도읍을 강화로 이전하는 사업은 급물살을 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