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고려에서 가장 오랜 기간 왕위를 지킨 고종(1192~1259, 재위 1213~1259)의 무덤이다.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던 그때 그는 왕이었다. 그는 강화에 왕으로 와서, 강화에서 왕으로 죽었다. 그러므로 홍릉이 차지하는 위치는 강화에서는 아주 특별하다. 눈이 내리다 그친 지난 19일 낮 홍릉. 햇살 받은 왕의 묘역은 하얀 눈이 그대로인 곳과 눈이 녹아 겨울 잔디가 드러난 곳이 뚜렷이 구분되었다. 아래에서 본 봉분 쪽은 눈이 다 녹아 있었으나 석인상과 혼유석이 있는
많은 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더욱 또렷하게 관측하기 위해 도심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고는 한다. 밤에, 자연의 빛을 가까이하기 위해서는 인공의 빛을 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천문대가 산 정상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화도 하점벌판은 산에 오르지 않고서도 육안으로 밤하늘의 별을 손에 잡을 듯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지’로 꼽힌다. 북쪽으로는 별립산과 봉천산이 장막을 치고, 남으로는 고려산 줄기가 막아서 인공의 불빛이 끼어들 여지가 적은 곳이다. 그 하점벌판 위쪽에 강화천문과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폐교한 강후초등학교 자리에
박용철 강화군수는 “2026년 올해에는 강화 남단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꼭 이루어내겠다”고 밝혔다. 박 군수는 지난 7일 오후 경인일보와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지난해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건립과 관련한 정부 예산 확보에 성공한 일을 제1의 기적으로 꼽으며 2026년에는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제2의 기적으로 일궈내겠다고 다짐했다. 박 군수는 “군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애절하고 절실하게 뛰었기에 4~5년 걸릴 일을 10개월 만에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박 군수는 국립강화고려박물관 관련 예산 확보의 공을 주민들에게 돌렸다. 박 군수
인천 강화군 소재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여성 입소자 성적 학대 의혹(2025년 12월4일자 6면 보도)과 관련, 강화군이 전문기관에 의뢰해 나온 조사결과를 공개 가능한지 법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박용철 강화군수는 지난 2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관내 한 장애인 시설 성적 학대 의혹과 관련해 국내 대학 산하기관에 맡긴 심층 조사 결과를 최근 제출받아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에 제공했으며 그 내용의 자체 공개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전문기관 3곳에 법률 자문을 의뢰했다고 했다. 해당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은 국비와 시비, 군비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월등히 높아 초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노인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찾아가는 이동 군수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사회를 초고령사회로 일컫는다. 강화군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노인 인구 비중이 초고령사회의 두 배나 높은 상황이다. 노인 인구가 많다는 것은 군 행정에 대한 피드백이 더디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박용철 강화군수는 지난해 10월 보궐 선거로 취임한 직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 193번지, 봉천산 남쪽 자락에 보물 제10호로 지정된 석탑이 있다. 이름하여 장정리 오층석탑. 강화도 유일의 고려시기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그 희소성 때문인지 보물 지정 시기도 1963년 1월로 꽤 오래되었다. 장정리 오층석탑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척이나 무겁게 만든다. 일단, 오층석탑이라고 하지만 기단부 위에 올려진 탑신을 이루는 지붕돌이 4개뿐이다. 지붕돌을 받치는 몸돌 역시 아래 2개 층에만 놓여 있고 3층과 4층부에는 몸돌이 없다. 맨 위층의 지붕돌과 탑의 꼭대기를 구성하는 상륜부는 아
1893년 가을밤, 강화 양사면 교산리 앞바다에서는 세계 선교 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배 위에서의 세례 의식이 펼쳐졌다. 달빛에 의지해 선상 세례를 베푼 이는 초기 한국 감리교의 대표 선교사 중 한 명인 존스(G.H. Jones, 조원시)였다. 세례의 주인공은 그 동네 출신 이승환의 모친. 기독교계에서는 이 선상 세례를 ‘강화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강화 양사면 교산리는 두 개의 면과 두 개의 리가 합쳐진 명칭이다. 선상 세례 당시 이승환 모자가 살던 마을은 서사면(西寺面) 교항리(橋項里)에 속했다. 일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 번이라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고려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국 북동부 지역의 세력 변화에 따라 고려 침략이 계속되었고, 일본 열도 쪽에서의 노략질도 끊이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고려-거란 전쟁은 한반도의 운명이 통째로 넘어갈 뻔한 결정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고려-거란 전쟁의 영웅으로 외교력에서는 서희, 전투력에서는 강감찬 장군을 꼽는다.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 있다. 김취려(金就礪, 1172~1234) 장군.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난 이태 뒤에 6
강화 전등사에는 평일, 휴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년에 100만 명 정도 찾는다. 전등사는 세로로 움직이는 시간과 가로로 연결된 공간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그리하여, 전등사 경내는 온통 오랜 이야깃거리로 넘쳐난다. 최근 조계종이 유명 사찰에서 진행하는 남녀 소개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전등사였다. 전등사는 60~70년 전에도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새출발하는 예식의 공간이었다. 강화지역 노인들은 전등사를 최초의 신식 결혼식장으로 기억한다. 1950년대 후반, 강화 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鄕校)가 인천에 있다. 교동향교.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29-49에 있는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처음 건립된 향교 중 하나였으며, 공자의 얼굴 그림(畵像)을 최초로 들여와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한반도 유학 전래 과정에서 무척 큰 상징성을 갖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교동향교에 공자의 화상을 안치했던 인물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1243~1306)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려사절요’의 졸기에는 “사람됨이 장중(莊重)하며… 항상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의 부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