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방문객들을 불편하게 했던 군(軍) 검문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강화군과 해병2사단은 31일 민북지역 출입통제 체계 개선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강화도 연미정 부근, 교동대교 입구 등 민통선 지역 4곳에서 행하던 검문 절차를 폐지하고 고속도로 요금소처럼 CCTV 관찰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강화군은 이를 위해 4월부터 총사업비 7억원을 투입해 검문소 지역에 CCTV 30~40대를 설치해 통합관제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검문 폐지는 이 사업이 마무리되는 올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정세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똑똑히 바라보는 요즘이다. 150년 전, 이 땅에서 체결된 강화도조약 당시가 꼭 그랬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이끌었던 신헌(1811~1884)을 주인공 삼아 펴낸 그의 첫 장편소설 ‘강화도’에서 ‘(조선은) 긴 잠에서, 긴 고립에서, 어둠에서 깨어나야 한다. 강화도는 그것을 알리는 여명(黎明)이자 경고였다’고 했다. 여명이자, 경고였다는 말은 강화도조약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여럿이라는 얘기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운노 후쿠쥬(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물맛 좋은 곳을 골라 터를 잡고 살았다. 800년 전 고려의 수도 강화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수많은 사람이 지금의 강화읍과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는데 그때 그들은 어디서 물을 조달했을까. 강화읍에는 강도(江都) 시기의 이야기를 간직한 우물과 샘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맑은 물이 샘솟고 있다. 송악산 남쪽 고려궁지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강화산성 북문인 진송루(鎭松樓)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고려궁지 서편 담장 가까이에 왕자정(王子井)이라 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서 보듯 현대전은 첨단 무기의 경연장이다. 전술 대결 또한 치열하다. 그렇다면, 800년 전 우리 고려의 군인들은 세계 각지를 휘젓고 다니던 몽골군에 맞서 어떤 무기와 전술로 싸웠을까. 그때 역시 고려의 첨단과 몽골의 첨단이 서로 맞부딪쳤다. 고려군의 무기 체계는 몽골군과 대적하기에 충분할 만큼 첨단이었다. 문제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와 전투 지휘관들이었다. 갖추고 있는 무기를 잘 활용하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전적으로 지휘관의 역량에 달렸다. 고려의 선박 운용과 해상 전투력 역시 무척 뛰어났는데, 몽골이
강화 지역의 인천공항 항공기 소음 피해와 관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맹성규 의원이 12일 서울지방항공청,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들과 함께 강화군 양도면 삼흥2리 산문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인 박찬대 국회의원도 동행해 주민들의 피해 사실을 들었다. 또한 ‘강화 남단 민항기 소음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연희 전 평택부시장과 강화군의회 박흥열 의원도 자리를 함께했다. 인천공항 제3활주로가 2019년 신설된 데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제4활주로까지 본격 가동되면서 인천공항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는 망나니 칼춤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망나니는 회자수(子子手)라고도 했다. ‘장길산’에서는 사형수 중에서 망나니를 고르고 그 망나니는 다른 사람을 죽여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장길산 패에 끼게 되는 우대용이 옥에 갇혀 참수형을 당할 처지에서 망나니를 맡게 된다. 우대용은 물길도 잘 알았는데, 강화 교동 수정산 아래에서 해적질할 배도 만들만큼 다재다능했다. 우대용이 봉산 부엉이라는 죄수와 함께 망나니가 되어 형장으로 나가서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서 망나니 칼춤을 추었다. 북소리가 이들 망
800년 전 강도(江都) 시기 강화도에는 지금의 청와대 영빈관 격인 외교사절을 위한 손님맞이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해안가에 가면 ‘고려천도공원’이 있다. 고려가 1232년 개성에서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 39년간이나 강화를 근거지로 삼아 몽골과 항전하면서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등 다양한 문화적 꽃을 피운 점을 기리기 위한 장소다. 고려천도공원을 조성하기 전인 1999년 강화군에서는 이곳에 ‘고려고종사적비(高麗高宗事蹟碑)’를 먼저 세웠다. 지금도 이 사적비는 고려천도공원의 핵심 요소다.
‘제주에 한라봉이 있다면, 강화에는 마니봉이 있다.’ 서해 연안의 최북단 지역인 인천 강화도에서 수막재배법을 이용해 제주도 한라봉을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그 주인공은 선원사 주지 성원 스님. 성원 스님은 지난해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자라던 10년생 제주 한라봉 나무 5그루를 선원사로 옮겨 심어 올해 한라봉을 수확했다. 선원사는 지난 6일 한라봉 수확 법회를 열었다. 성원 스님은 지난 1월에는 선원사에서 수확하는 한라봉을 ‘마니봉(摩尼峰)’이라는 이름으로 상표출원을 마쳤다. 제주도의 상징인 한라산을 따서 한라봉이라고 한다면, 강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전쟁까지 더해지면서 세계가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양상이다.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첨단 방공망으로 요격하는 장면을 영화 보듯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무기 과학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게 된다. 다행히도 우리 기술력은 K-방산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각국에서 인정받고 있다. 과학 기술은 문화 수준과 함께 성장하게 마련이다. K-방산과 K-컬처가 세계 주요 콘텐츠로 떠오른 요즘 우리는 이와 관련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과학 기술과 문화
40여 년 계속된 여몽전쟁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삼별초였다. 삼별초 항쟁은 고려 정부가 몽골에 항복하는 의미로 강화도에서 개성으로 다시 도읍을 옮기기로 하자 그에 반발해 일어났다. 삼별초는 몽골에 굽히지 않겠다면서 새로운 항몽 정부를 세웠는데, 그 시작점이 바로 강화도였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그려진다. ‘고려사절요’는 ‘재·추(주요 신하)들이 모여 다시 옛 서울에 도읍하기를 의논하고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다른 마음이 있어 좇지 않고 제 마음대로 창고를 열었다’고 기록해 삼별초 항쟁의 시작을 알리